임기 만료 4개월을 앞두고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계로 들어설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아직 그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계 진출은 물론 더 나아가 대권도전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망론’ 조성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보수극우 언론들이다.
이들이 윤석열 띄우기에 쏟고 있는 정성과 열성은 보기에도 눈물겨울 정도다. 줄곧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보수언론들로서는 차기 대선에서 자기 진영에 승리를 안겨줄만한 야권의 마땅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드롬급 현상을 일으키며 등장한 윤석열이라는 존재가 가뭄에 소나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를 다루는 논조는 완전 하이퍼 상태이다. 파평 윤씨 족보까지 들먹이는 낯간지러운 내용의 기사들이 넘쳐나고 칼럼니스트들은 앞 다퉈 온갖 훈수두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 후보들이 앞서고 있을 때는 “1년 전 대선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했던 언론이 윤석율 1위 여론조사들이 나오자 입장을 싹 바꿔 ‘지금 1위인 윤석열 당선확률 80%’라는 황당한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한 매체는 인공지능 관상 앱에 윤석열의 사진을 넣었더니 왕의 상으로 나왔다는 가십성 얘기까지 실었다. 참고로 언급하자면 성범죄자 조두순과 연쇄살인범 이춘재도 이 앱에 사진을 넣어봤더니 왕의 상으로 나왔다. 이런 보도들에서는 일그러진 욕망만 읽힐 뿐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상식이나 판단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윤석열 현상’이 일시적 거품으로 끝날지 아니면 파급력을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의견과 전망이 엇갈린다. 결국 그의 미래는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진로 선택은 물론이고 그 선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또한 스스로의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아무리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려 피눈물 나는 노력을 쏟는다 해도 그 자신이 깜냥이 되지 않으면 한갓 헛된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국가지도자의 명운이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하나는 행운을 뜻하는 ‘포르투나’(fortuna)이고 다른 하나는 덕성과 자질을 의미하는 ‘비르투’(virtu)이다. 아무리 자질을 갖추고 있어도 운명 같은 행운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최고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
포르투나로 보자면 윤석열은 더할 수 없이 승한 기운을 누리고 있다. 등장부터가 그랬다. 사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독자적인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니다. 검사 시절 국회청문회 자리에서 한 의원으로부터 “당신은 사람에게 충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했던 수동적인 답변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발언 하나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그는 존재감을 키웠다. 여기에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과 엄호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윤석열을 키운 것은 여론이 아니라 언론”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총애를 바탕으로 그는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윤석열이 대권 지지도 1위로 뛰어오르자 보수언론들은 그가 ‘별의 순간’을 잡았다며 흥분했다. 그가 정치인을 길을 선택할지, 한다면 언제 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선언하는 순간 그는 ‘진실의 순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 국면에서 반문재인 정서를 대변했을 뿐 복잡한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히거나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정치인의 길을 택한다면 그 길을 걸어갈 만한 역량과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검사 시절 자신의 수상한 행적과 탐욕의 기운이 어른거리는 처가 쪽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사퇴의 변을 던진 날 한 법조기자는 “이것을 다 외울 정도로 암기력이 뛰어나고 카메라 플래시에도 울렁증을 보이지 않았다”며 ‘윤비어천가’를 읊었다. 행여 그 뛰어난 암기력을 바탕으로 속성과외만 잘 받으면 시대를 이끌어갈 철학과 역량을 갖춘 듯 행세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대권을 꿈꾸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그가 진짜 별이 될지 아니면 잠깐 반짝하다 땅으로 떨어지는 유성의 신세가 될지를 가늠해줄 ‘진실의 순간’을 지켜보게 될 심판자들은 바로 국민들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의 비르투를 분별해내는 시민들의 비르투를 민주공화정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 본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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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