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일어났을 때 이를 타인종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공통된 악습이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집권 세력은 민중의 분노를 달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때로는 이를 부추기거나 방관한다.
‘인류 최악의 재난’으로 불리는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는 유대인이 표적이 됐다. 1348년 프랑스 툴롱에서 흑사병이 돌자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40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 이를 시작으로 유대인 학살 히스테리는 유럽 전체로 번졌다.
독일 마인츠에서는 3,000여 유대인들이 몰살당하면서 커뮤니티 전체가 사라졌다. 1년 여 동안 이렇게 파괴된 유대인 커뮤니티가 500개가 넘는다. 제2차 대전 직전까지 폴란드 등 동유럽에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던 이유는 서유럽의 박해를 피해 이들을 받아 주는 곳으로 도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히틀러에 의해 사실상 전멸당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도 비슷한 이유로 죽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터지자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6,000여 조선인이 학살됐다. 일부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경찰서로 몸을 숨겼지만 자경단은 여기까지 쳐들어와 죽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힘없고 소수였던 아시안은 희생양이 됐다. 먼저 피해를 당한 것은 아시안 중 가장 일찍 미국에 온 중국인들이다. 185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 막노동을 하던 중국인들은 일자리를 뺏아 간다는 이유로 백인들의 단골 펀치백이 됐다.
거기다 1854년 가주 대법원은 백인 조지 홀이 중국인 리싱을 죽인 사건을 다룬 ‘국민 대 홀’ 사건에서 중국인들의 증언 능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인 폭행과 살해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
그 결과가 1871년의 중국인 학살이다. 중국 갱단 간의 싸움으로 백인이 사망하자 500여 백인과 라티노들은 LA의 중국인 커뮤니티를 둘러싸고 17명의 중국인 남성에게 린치를 가했으며 이들 일부를 가로등에 매달아 살해했다. 8명의 용의자가 체포돼 유죄 평결을 받았지만 이는 상급 법원에서 모두 뒤집혔고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1882년에는 연방 의회가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켜 아예 중국인의 입국을 막았다. 이 법은 그 후 60년 이상 발효하다 제2차 대전에서 중국이 미국의 연합국이 된 후인 1943년에야 폐기됐다. 중국인 입국은 금지됐지만 중국인에 대한 박해는 계속됐다. 1885년에는 와이오밍에서 28명의 중국인 광부가 백인들에 의해 학살됐다.
피해를 본 것은 중국인만이 아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재미 일본인들은 잠재적 이적 행위자로 분류돼 수만명이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이들은 그 후 40여년이 지나서야 사과와 함께 1인당 2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았다.
아시안에 대한 폭력은 과거 차별에 대한 배상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중에도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터진 빈센트 친 사건이다. 중국계인 친은 미국 노동자 일자리를 뺏어 가는 일본인으로 오인돼 디트로이트의 한 바에서 야구 방망이로 살해됐다. 살해범들은 검거됐으나 3,0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진 후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반 아시안 정서에 불을 지른 것은 미 역사상 가장 천박하고 저질스런 인간의 하나인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2020년 3월 16일 트위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그 후 트위터에서 ‘중국 바이러스’ 사용 횟수는 10배가 늘어났다. 트럼프는 또 툭 하면 이를 ‘쿵 플루’라고 부르며 마치 코로나 사태가 중국인들 때문에 생긴 것처럼 매도했다.
그 후 1년 사이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는 150%가 늘어났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84세 노인이 길바닥으로 밀쳐져 사망했으며 뉴욕에서는 61세 남성이 얼굴에 박스 커터로 상해를 입었고 52세 여성은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터진 것인 조지아 애틀랜타 인근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 학살 사건이다. 트럼프가 이들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가 부추긴 반 이민, 반 아시안 정서가 이런 사건이 빈발하는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바이든을 미롯한 미 주류 정치인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사건을 규탄하고 있다. 한인 사회도 한 마음으로 반 아시안 정서와 범죄 확산을 막는데 힘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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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