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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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2021-03-18 (목)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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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盜跖)은 아주 큰 도둑놈이었다. 그래서 도척은 도둑의 대명사로 되어 있다. 그는 9천명이나 되는 부하를 데리고 다녔다고 하는데 ‘도적에게도 도적의 도(道)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반면에, 요임금은 순임금과 더불어 고대 중국의 성인- 천자- 성천자(聖天子)로 여겨지고 있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堯舜時代(요순시대), 요순시절”이라는 말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도둑놈인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서 짖는다고?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대의 눈에는 그 개가 또는 그 상황이 이상하게 보이는가? 그 무슨 잘못된 점이라도 있어 보이는가?
내가 볼 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왜냐하면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서 짖는 것은 요임금이 ‘도둑놈’이기 때문이 아니고 개는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는 지금 ‘자기의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개는 개의 삶(犬生)을, 개의 본성(本性)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개가 보름달(月)을 보고 짖는 것은 저 달이 나쁘거나 저 달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다. 개는 그런 습성(習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내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 내가 이런 저런 내용의 글을 쓰는 것, 내가 사람에 따라서 다른 내용을 가르치는 것 등등은 나는 철학자로서 그리고 스승(guru)으로서, ‘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란다.
철학자가 하는 일이란 “인간의 머리- 이성과 상식, 논리로 합당하게 따질 수 있는 데까지 그렇게, 온갖 것을, 따지는 것”이고, Guru(영적인 스승)가 하는 일이란 “제자의 본성(本性)을 흔들어 깨우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대의 견해(見解)와 나의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전혀 없고, 그대가 부대껴야 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서로 서로 달라야 정상인 것이다.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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