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쿠팡의 힘

2021-03-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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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국민성 중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점이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OECD 각국 중 1위를 차지한 것이나(OECD 평균 25%, 한국 78%) 간편 속성 요리의 대표 라면 소비량이 1인당 한 해 평균70개가 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이런 기질을 이용해 대박을 터뜨린 기업이 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 상거래 업체인 쿠팡이다. 지난 주 뉴욕에서 성공리에 상장된 쿠팡 주식은 상장 첫날인 11일 공모가에서 70%가 오른59달러 60센트에서 시작해 49달러 25센트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시가 총액 880억 달러에 달하는 수치로 외국 기업으로는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다.

코로나 이후 대세로 떠오른 아마존이 뚫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둘이 있는데 알리바바의 중국과 쿠팡의 한국이 그들이다. 한국은 전자 상거래가 가장 활발하며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서 전자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40%로 세계 1위다. 2019년 한국인이 전자 상거래로 지출한 돈은 1,280억 달러였는데 이는 2024년에는 2,06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가 속도 또한 1위다.


쿠팡은 생긴 지 10년 남짓 한 신생 기업이나 이미 30개 도시 100개 물류 센터를 가지고 4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며 한국의 전자 상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급속한 성장을 가능케 했을까. 쿠팡은 자정 전에만 주문을 하면 다음 날 새벽 배송을 완료하는 ‘로켓 배송’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회사다. 배달을 용역에 맡기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쿠팡은 독자적인 자체 배달망을 갖추고 있다.

쿠팡의 창립자인 김범석(42)은 상사 지사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왔다 주저 앉은 한인 1.5세로 하버드 경영 대학원을 중퇴하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란 투자 회사에 다닌 경력이 있다. 한국인의 기질과 미국 금융권을 함께 아는 점이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을 성공케 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는 2010년 한국에서 쿠팡을 창립했을 때 직접 화물차를 구입하고 운전 기사와 함께 배달을 했을 정도로 빠른 배송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쿠팡은 작년 6,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누적 적자가 4조원이 넘는데 그럼에도 시설 투자를 계속해 작년 한 해 매출을 전년에 비해 2배에 가까운 13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초기에는 적자보다 매출 증가가 더 중요하다는 아마존의 철학을 본딴 것이다. 그 동안 진 빚은 뉴욕 상장에 성공함으로써 단숨에 해결했다. 쿠팡의 시장 점유율은 20%로 아마존의 38%보다는 작지만 성장 속도는 이마트나 신세계 등 기존 업체를 능가한다.

김 의장이 한국 대신 미국 상장을 결심한 것은 자본 시장 규모가 훨씬 클뿐더러 적은 수의 주식으로 경영권을 쥘 수 있는 차등 의결권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100% 소유하고 있는 B 클래스 주식은 한 주가 29 표의 의결권을 갖고 있어 주식을 공모해도 경영권을 뺏길 염려가 없다.

뉴욕 상장을 준비해 온 한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가 쿠팡만은 아니다. 식료품 배송업체로 혜성 같이 떠오르고 있는 마켓 컬리도 있다. 바로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하룻 밤새 배송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업체의 시가는 쿠팡의 1/10의 규모지만 식품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2014년 29살 나이에 이 회사를 창립한 김슬아(37)는 미국 웰즐리대를 나오고 골드만 색스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역시 한국, 미국을 다 잘 아는 젊은 기업인이다. 김 대표는 자기가 먹어보지 않은 식품을 고객에게 팔 수 없다며 지난 6년간 개와 고양이 음식을 비롯 3만5,000개에 달하는 아이템을 모두 맛보고 평을 남겼으며 그 중 1만5,000개를 팔고 있다고 한다. 억만장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런 정성 덕에 마켓 컬리 고객의 재이용률은 60%로 업계 평균의 2배에 달한다.

네이버의 이해진, 카카오톡의 김범수, 다음의 이재웅,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에 이은 김범석과 김슬아의 등장은 한국 경제계의 주도권이 새 세대로 넘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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