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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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허장강·김희갑의 ‘서울의 지붕 밑’

2021-03-15 (월)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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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허장강, 김희갑, 도금봉, 최은희, 김진규 등 옛날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이 영화를 어렵사리 스마트전화를 TV에 연결시켜 극장에 간 기분을 내며 보았다.
40여 달러를 들여 USB C to HDMI Cable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조그만 기기를 수없이 Best Buy에 들락거리다 마침내 사서 옛 한국 명화 중 첫 번째로 본 게 이 영화다. 돈 들어간 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운동이나 음악 애호가들은 다 알겠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음악회나, 운동경기 관람을 위해 열심히 일해 저축한 돈을 아깝지 않게 투자함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바이다.

일생에 하고 싶던 일들을 여러 사정들이 있어 이루지 못한 것들이 손가락 다섯 가락 정도는 있다. 어디 필자뿐일까?
대표적인 게 애팔라치안 산맥 등정(메인주에서 조지아주 2200여마일, 6개월 소요)이다. 한 때 젊은이들의 ‘평생소원 항목(Bucket List)’에 빠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참고로 3대 미국 트레일은 Pacific Crest Trail, Appalachian Trail, Continental Divide Trail이다.
대개는 젊어서는 먹고 살기 바빠 시간이 없어서, 늙어서는 시간은 있으나 건강이 받쳐주질 못해서이나, 필자의 경우는 아마도 나의 결심이 젊었던 예전만 못할 뿐만 아니라 집사람의 우려 섞인 반대 때문이 아닐까 한다. 건강은 아직까지 자신 있다고 하면 집사람은 웃을 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것들을 이룬다면 도전, 고난 그리고 극복이 어우러져 평생 살아가며, 자신감과 이타심으로 자신은 물론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줄로 안다.

그렇기에 해군 특수부대(Navy Seal) 출신들은 포용력, 지도력이 필요한 큰 조직의 지도자를 제1의 순위에 들어 호감이 좋다고 한다.
보고 싶던 명화 한편 보고 글을 쓴다는 게 좀 비약했던 것 같아 이야기를 ‘서울의 지붕 밑’으로 되돌리자.
한의사 김승호, 좋게 얘기해 자칭 명리학(사주관상가)의 대가 허장강, 복덕방 아재 김희갑의 얽히고 설킨 우정과 해학, 술 산다 해놓고 술 먹다 변소에 간다 핑계 대고 뺑소니치는 허장강, 그를 찾아오겠다고 그 역시 뺑소니치는 김승호, 볼모로 잡힌 줄도 모르고 술만 먹다 술값대신 허접한 옷만 벗어서 주곤 발가벗기듯 비 오는 날 주모에게 내쫒기다시피 빗물에 흠뻑 젖은 듯한 김희갑의 애처로운 비틀거리는 모습, 웃음과 애처로움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이걸 보고 있노라면 묵었던 체증이 쏴악 내려가는 것 같다.

서양의학을 공부한 이웃의 산부인과 의사 김진규와 한의사 김승호의 미인 딸 최은희의 사랑이야기,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고 막무가내 하는 김승호, 그의 갖은 반대 아닌 반대를 이겨내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의 영화는 우리들 70-80대 노인들에겐 6-70년 전으로 타임 마신을 타고 잠시나마 서울로 되돌아갔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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