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말하는 세상이 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알기가 어렵다. 눈의 표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팬데믹이 되면서 눈을 읽고, 눈을 그리게 된 화가가 있다. 원래는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시애틀 다운타운에 작업실이 있는 자야쉬리 크리쉬난이라는 화가의 이야기인데, 그녀는 요즘 그림 한 점을 그릴 때 눈에다 시간의 반 이상을 쏟아 붓는다. 예술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최근 1년 동안 그가 그린 사람은 의사, 간호사 등 방역 일선의 의료진들이었다. 눈밖에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미시간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두 사촌의 얼굴을 그려 보내준 게 시작이었다. 팬데믹이 덮치자 하루 2교대로 일주일 내내 일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힘내라는 말을 그림으로 전했다. 이런 사람이 사촌들뿐이랴. 다른 이들에게도 고마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인물화가 150여명에 이르렀다. 그림 요청은 개인 웹사이트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처음 그린 병원 중환자실 의사. 눈에는 고글, 입에는 마스크, 머리에는 캡을 눌러써 눈밖에 드러난 게 없었다. 눈 속에는 많은 미소가 들어 있었다.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아주, 아주 친절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어떤 젊은 의료 기사의 눈에서는 두려움이 읽혔다. 어떤 눈은 행복, 또 어떤 눈은 근심과 적막함을 전했다. 눈이 말하는 메시지는 다양하고, 정직했다.
코로나로 숨진 X레이 기사의 그림도 부탁받았다. 중가주의 한 병원에서 일했다는 그녀의 눈에서는 어떤 빛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을 그리면서 평소 쓰지 않는 색을 골랐다. 광채, 즐거움, 기쁨을 말하는데 알맞을 것 같은 색이었다. 36살에 숨진 그녀는 늘 즐거움이 넘치던 쾌활한 사람이었다고 가족들은 후에 전해줬다.
백신을 맞을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응급실 의사도 있었다. 돌보던 많은 환자들이 숨졌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림과 함께 따로 응원의 편지를 써 보냈다. 당신은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얼른 백신을 맞고 더 많은 환자들을 돌보아 달라고. 그려진 작품은 모두 그림의 주인공들에게 선사했다. 국립 전염병 연구소장인 닥터 파우치의 얼굴도 그렸으나 그에게는 아직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들을 그리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붓을 움직이면서 마음 속의 암울함도 지워졌다. 그녀의 예술은 우선 그 자신에게 구원이 됐다.
포옹하지 못하며 산 지 1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만나도 주먹끼리 부딪힐 뿐 손도 맞잡지 않으니 반가운 마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위로와 인사는 자신에게 있는 것, 자기가 가진 것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임도 깨닫는다.
시애틀의 화가처럼 재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투고 주문으로 단골 식당을 응원할 수도 있다. 테이크 아웃 한 끼 정도는 이웃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은가. 오랜 기간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한 여성의 말이 기억난다. “위로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 전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전화 한 통으로, 메시지 하나로, 카톡으로도 전할 수 있는 게 위로였다고 했다.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있었다.
얼마 전 LA에서 열린 골든 글로브즈 시상식에는 팬데믹의 필수업종 종사자들도 초대됐다. 델타 항공의 한 여승무원도 초청을 받았다. 생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으나 입고 갈 옷이 마땅찮았다. 페이스북의 한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렸다. 사이즈12 드레스에, 핸드백, 액서사리까지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머리와 화장을 해 주겠다는 사람도 나섰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서로 나누니 별들의 잔치에서도 꿀리지 않을 것들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한다.
옷 이야기라면 하나 더 들은 것이 있다. 지난해 숨진 게임쇼 ‘제퍼디’의 진행자 알렉스 트레벡의 이야기다. 유가족은 그가 입던 옷 중의 일부를 한 단체에 기부했다. 정장 4벌, 셔츠 58개, 넥타이 300개, 폴로셔츠 25개, 스웨터 14개, 스포츠 코트 9개, 구두 9켤레, 벨트 15개 등이었다. 이 단체는 중독자, 노숙인, 전과자들의 새 출발을 돕는 곳이었다. 구직 인터뷰에 갈 때 알렉스의 옷들이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가족들은 그의 전설에 한 조각을 더했다.
팬데믹으로 연로한 부모를 잃은 사람, 가족 둘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 간호 조무사로 내보냈던 19살난 딸을 잃은 부모도 있다.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어떤 자영업자는 직원들 월급 때가 돌아오면 피가 마른다고 한다. 일자리를 잃은 후 직장이 빵만 해결하던 곳이 아님을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다. 불행에 등급을 매길 수는 없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뜻밖의 불행으로 고통받고 있다.
종일 음울한 뉴스만 접하다 보면 잠자리에도 악몽이 찾아온다. 요즘 같은 때 신문과 방송들은 훈훈한 소식도 전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 같으나 아무리 뒤져 봐도 따스한 뉴스는 열에 하나가 안된다. 위에 나눈 스토리들은 CNN등이 전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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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