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로 밀려온 조난자가 된 기분
2021-03-08 (월)
이혜란 / 실버스프링, MD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Cast Away’(난파, 표류, 조난자)란 영화를 보았다. 페덱스 우편배송 회사에서 일하는 척 놀랜도가 주인공(톰 행크스 주연)이다. 그는 해외우편물을 보내는 비행기에 친구 몇과 탔다가 폭풍으로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지며 혼자만 살아남아 어느 외딴 섬 해변가에 떠내려 온다.
지나가는 배도 없고 지나는 비행기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는 모래위에 도와달라고 ‘HELP’를 써놓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바위에 줄 하나를 그으며 날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곳은 태평양의 작은 외딴섬인데 심한 파도에 써놓은 글씨는 자고나면 지워지고 물고기와 게를 잡아먹으며 불을 피워 구어 먹기도 한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으나 너무 외롭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마침 함께 파도에 떠밀려온 박스를 몇 개 뜯는다. 그 중 하나가 ‘Wilson’이라고 쓴 회사 배구공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공에 눈과 코, 입을 그려서 바위 위에 올려두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날부터 그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가 와서 동굴에 숨어 잠을 잘 때도 그는 윌슨을 데리고 가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거의 4년이 지나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며 뗏목을 만들어 윌슨을 데리고 섬을 떠나가지만 심한 파도로 뗏목 배는 부러진다. 윌슨은 멀리 가고 작은 나뭇조각에 누워 기진맥진한 상태로 밀려가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상선에 발견되어 구조된다.
요즈음 생활이 마치 이 주인공의 무인도 생활처럼 메마르고 친구들 없는, 마치 표류로 떠내려 온 조난자가 된 기분이다. 이제는 가끔 사회적 단절로 소외된 생활, 수분 없는 친구들의 목소리 베이스 톤에 좌절의 목소리에서 이 시대의 혼란을 읽는다. 시간의 독재와 바이러스에 눌려 지나간 일 년. 이제는 무엇이 최선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더듬거리며 살아간다. 우리는 아마 영원히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역시 타인들과 함께 뭉쳐 살아가는 존재인데, 불확실 하고 불안한 미래, 변이 바이러스들의 반란들은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이상하리만큼 외출할 일도, 또 굉장히 급한 일도 사라졌다.
<이혜란 / 실버스프링,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