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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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2021-03-07 (일) 박찬효 약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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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은 미국 서북부의 가장 큰 도시이다. 오래전에 다녀왔는데, 풍광이 아름다운 반면에 언덕길이 많고, 특히 안개와 비가 잦아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최근에 이 도시 이름 “시애틀”에 관련된 아픈 사연을 알게 되었다.

북 아메리카 서북부에 거주하던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소위 ‘인디안’) 우와미시족괴 수쿠아미시족의 추장인 ‘시애틀’은 1854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인 지금의 워싱턴 주가 있는 땅을 매수 하겠다고 제의한 미합중국의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냈는데, 이 편지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고문서 비밀 해제’로 120년만에 공개되었다. 결론을 말하면,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의 편지에 감복하여 그 지역을 추장의 이름을 따서 ‘시애틀’로 명명했다.

장문의 편지를 일부만 소개하면 추장은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 주려는가?”라고 질문하며, “우리가 이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라고 안타까운 현실을 호소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추장은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형제자매이다…”고 땅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픔을 절규하고 있다.

그는 또한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바로 우리 황색인들에게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그 땅과 자신들을 혼연일체로 보고 있다. 이 편지를 읽노라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비애가 절절이 가슴을 파고 든다.

덧붙여 생각나는 것은 디 브라운이 쓴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라는 책인데, 그 책은 미국 인디안이 당한 잔혹한 역사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오글라라 수우족 족장의 한탄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 땅을 먹었다”란 구절이 들어 있다.

몇 년전 미 대륙을 횡단 여행하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남동쪽의 원주민들을 미합중국이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킬때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걸었던 길을 ‘trail of tears’라 부른다고 한다. 이 길은 약자의 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래전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관광하면서, 그 일대에 모여 사는 체로키 부족의 민속촌을 방문한 일이 있다. 관광객들에게 자기 부족의 역사를 들려주던 안내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목격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슬프고 억울한 마음에 목이 메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뼛속 깊이 자리 잡은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백인들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다. 본인이 중.고등 시절에 신나게 관람하던 서부 영화는 백인 개척자들이 원주민을 공격하며 노략질하는 비극적 내용이다. 또한 남미 여러나라에 가서도 스페니쉬들의 과거의 잔혹한 만행을 배울수 있었다.

이야기가 좀 비약되는 면이 있지만, 만일 타민족의 이민에 지나칠 정도로 개방적인 정책이 계속되어 미국의 주류세력인 백인들이 주도권을 잃어간다고 생각할때, 그들이 소수민족에게 행할 수도 있는 가혹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섬뜩하다.

물론 이 생각은 본인만의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요즘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성 범죄가 잇따르는 것을 보며, 이러한 생각이 전혀 근거없는 망상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박찬효 약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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