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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애들 크면 우리 헤어질까?

2021-03-04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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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싱글이 많다. 여자 사람, 남자 사람, 돌싱, 결혼 생각 없는 여자, 결혼이 싫은 남자, 네버 빈 매리드 사람, 바라건대 자기 같은 와이프나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여자, 남자나 여자끼리 살려고 옷장에서 나온 사람들 등등이다. ‘결혼이란 새장’이라면서도 새장 밖의 새들은 기어이 들어가겠다고 아우성, 이미 들어간 새들은 뛰쳐나가겠다고 발버둥이다.

내가 속한 모임에 혼자 나와 앉아있는 매력적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은 줄긋기로 복잡하다. 이 남자를 그 여자랑? 이 여자랑 그 남자를? 아냐 아냐, 안 맞아. 아니 오히려 잘 맞을 수도 있지. 당사자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내 멋대로 짝을 지었다가 풀었다가 상상하곤 한다.

친구모임의 관심사도 비슷하다. 코로나로 못 만난 지 1년. 지난 주 마침내 줌 동창회를 했다. 각자 음식과 마실 것들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진열하고, 호스트가 알려준 번호와 패스코드 입력. 잠시 후 “삐룽!” 사운드와 함께 줌 미팅방이 열렸다.


어머 어머, 진짜 오랜만이다 얘. 너 하나두 안 변했네? 뭔소리야, 1년 새 10파운드가 쪘는데. 마스크 없이 말하니까 살 것 같아. 하하하 호호호…. 각자의 일 이야기, 정치, 경제, 월드뉴스를 거쳐 PPP 신청 경험담을 늘어놓으면서 화제는 흘러 흘러 다시 ‘평생웬수’가 등장하는 신변잡사로 돌아온다.

죽고 못 살게 불타는 연애 끝에 결혼한 친구도 결혼이 속박인 줄 미처 몰랐다고, 첨부터 혼자 살걸 그랬다고 푸념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에 치달았던 친구가 말한다. 난 이제 혼밥이 싫어. 그때 내가 좀 더 참을 걸 그랬나 싶어. 딴 친구가 이어간다. 우린 요새 ‘휴혼’ 계획하고 있어. 따로 살 생각만 해도 좋아서 걷다가 씨익 혼자 웃는다니까!

휴혼은 평화적 별거다. 최근 부쩍 늘어가는 결혼 졸업, 졸혼이나 휴혼은 법적으로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상대가 선택하는 자유를 존중하며 자기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자는 취지다. 한국의 50~80대 황혼 이혼(27%)이, 결혼 햇수 5년 미만의 신혼 이혼(25%)을 앞지른 게 벌써 10년 전이다.

졸혼은 황혼기 이후, 이혼의 부정적 요소는 피하면서도, 부부간 의무조항에서 해방되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부부는 각자의 생활에 집중한다. 서로를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그저 친구나 오누이처럼 살아갈 뿐이다. 같은 집에 살아도 좋고 각자 살아도 상관없다.

졸혼 관련, 한국 심리학회지의 발표는 주목을 끈다. 졸혼을 고려중인 50~60대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이들은 공통된 심리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이혼을 원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같이 사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자유’를 원하지만 ‘주어지는 자유’를 원하는 것이지 ‘스스로 쟁취하는 자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이혼을 하려면 자녀가 걸리는데 졸혼은 자녀에게 덜 충격적이다.

“애들 크면 우리 헤어질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부의 숫자도 지난 5년 사이 가파르게 늘었다. 지난해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던 50~90대 남녀의 이혼 고민 사유로, 여자는 남편의 경제적 무능, 폭력과 외도를 꼽았지만 남성의 경우, 아내의 가출을 보고하는 건수가 늘어났다.

60대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는 비교적 경제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기대수명 또한 늘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살았는데, 100세 시대를 맞아 앞으로도 수십 년 더 같이 살아야 하는 새 과제에 마주쳤다. ‘왜 이혼하지?’ 가 아니라 ‘왜 같이 살아야 하지?’를 묻는 시대. 금혼, 은혼이 더 이상 가문의 프라이드가 아닌 시대가 가까운 것 같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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