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주지사 소환(Recall) 시도는 별 뉴스가 아니다. 대기업의 돈과 정권의 결탁이 심했던 19세기 말부터 진보 지도자들이 ‘직접 민주주의’ 개혁으로 추진한 선출공직자에 대한 주민소환제도 ‘리콜’이 입법화 된 1911년 이후 주지사 소환 추진만도 55번이나 되었다.
실제로 소환 특별선거를 실시하고 소환 발의안이 통과되면서 주지사가 퇴출당한 경우는 2003년 그레이 데이비스 민주당 주지사 단 한 명뿐이었지만 1960년 이후 거의 모든 캘리포니아 주지사들이 소환운동의 대상이 되어왔다.
임기 중 몇 차례씩 소환 추진에 직면했던 주지사도 여럿이었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제리 브라운도 두 세 번씩 겪었고, 퇴출당한 데이비스의 뒤를 이은 공화당의 스타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대한 소환 청원이 접수된 것은 무려 7번이었다. 대부분 소환운동은 투표로 이어지기는커녕 알려지지도 못한 채 지지 서명 부족으로 무산되었다.
요즘 캘리포니아에선 개빈 뉴섬 민주당 주지사를 퇴출시키려는 소환운동이 한창이다. 지난해 2월 북가주의 공화당원인 한 은퇴 경찰이 큰 기대도 없이 접수한 소환 청원이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으로 강력한 모멘텀을 얻고 있어서다. 소환투표 실시를 위해 필요한 지지서명 확보도 막바지 피치를 올리는 중이다.
뉴섬은 임기 만료 전 퇴출당할까? 간단한 산수로도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환투표는 어차피 정치적 대결인데 민주당 유권자가 전체의 46%로 24%에 불과한 공화당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환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리콜 부결로 뉴섬은 퇴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LA타임스는 “캘리포니아 공화당 표밭은 소환 선거를 성사시킬 정도는 되지만 통과시킬 만큼 충분치는 못하다”고 분석한다.
소환 특별선거 실시를 위해선 3월17일까지 지난번 주지사 선거 투표자의 12%에 해당하는 149만5,709명의 지지서명을 제출해야 한다. 소환추진단체는 이미 182만여 서명을 확보했다며 무효 서명을 감안한 200만명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보인다. 2월초 선거당국 검증에서 제출된 서명의 유효율도 상당히 높은 84%로 나왔으니 근거가 충분하다.
세금, 홈리스, 총기규제, 불법이민, 경찰지원 감축 등 진보정책을 타겟으로 시작되었던 소환운동은 팬데믹 확산과 함께 주지사의 코비드 정책으로 포커스가 바뀌었다. 그래도 큰 호응은 받지 못했던 소환운동에 결정적 기회를 준 것은 뉴섬 자신이었다. 4천만 주민들에겐 엄격한 봉쇄령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명령을 내린 주지사가 자신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열린 생일파티에 참석한 사진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뉴섬은 즉각 사과했으나 실수의 대가는 비쌌다. 파티 당일 5만여명에 불과했던 서명자 수가 한 달 만에 50만명으로 불어났다. 뜻밖의 날개를 단 소환운동엔 공화당 주류와 보수단체들의 적극 지원이 뒤따랐고 2월초엔 모금액이 250만 달러에 달했다.
데드라인에 맞춰 지지서명이 제출되면 선거관리당국은 4월29일까지 서명검증을 마쳐야 한다. 소환선거 실시 요건이 충족된 후에도 재정분석 등 절차에 필요한 기간들을 계산하면 실제로 선거는 11월에나 가능해진다. 민주당이 합법적으로 몇 달 더 지연시킬 수도 있다.
투표 항목은 두 가지다. 첫째 뉴섬의 리콜 여부, 둘째 뉴섬 리콜이 통과될 경우 대체 후보 선택이다. 이미 공화당 인사 여러 명이 출마의사를 밝힌 주지사 보궐선거의 후보 수에는 제한 규정이 없다. 데이비스 소환투표 당시엔 135명이 출마했었다.
2003년 퇴출당한 데이비스와 현재 뉴섬의 정치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데이비스는 2002년 선거에서 과반수 미만 47%의 지지로 재선되었으나 뉴섬은 2018년 선거에서 62%-38%, 24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다.
소환투표 전 데이비스의 지지율은 25%로 추락했다. 신속한 팬데믹 초기대응으로 치솟았던 뉴섬의 지지율 역시 강력한 락다운 시행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백신접종 배포 지연 등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대폭 하락했으나 그의 입지는 데이비스보다 훨씬 우세하다.
공공정책연구소(PPIC) 조사에선 52%, UC버클리 조사에선 46%로 집계된 지지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캘리포니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18년 전에 비해 진보성향이 훨씬 더 짙어진 ‘딥 블루 스테이트’가 되었고 비백인 유권자도 훨씬 많아졌다.
이에 더해 팬데믹 감소세가 계속되면서 등교 및 영업재개가 활발해지고 바이든 대통령의 예상대로 여름이 되기 전 모든 미국민에 대한 백신접종이 이루어진다면, 그래서 지친 주민들이 일상을 되찾아가게 된다면 소환투표가 통과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뉴섬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선거란 끝날 때까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인데다 뉴섬의 경우엔 언제라도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절대변수 ‘팬데믹’에 발목을 잡힌 상태여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아무리 전망이 낙관적이지만 소환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하고, 소환 선거에서 승리한다 해도 재선에 출마할 내년 선거가 코앞이다. 굳이 세금을 낭비하는 소환 투표가 아니라도, 뉴섬은 곧 코비드 대처 등 주정업무에 엄정한 평가를 내릴 심판대에 서야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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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