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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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

2021-03-03 (수)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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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퇴근 길에 있었던 일이다. 전 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루종일 계속되더니 60센티미터 넘게 쌓였다. 제설차들이 연신 도로 위를 바쁘게 오가며 쌓인 눈을 치우지만 엄청나게 쏟아지는 노리스터 폭설은 치우기가 무섭게 도로를 다시 덮어버렸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 조심 운전하면서 간신히 집에 까지 거의 다 왔으나 거기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차가 이면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움푹 패인 곳에 빠져버린 것이다. 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눈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헛바퀴 돌면서 타이어 타는 매캐한 냄새만 날 뿐 차는 요지부동.

그때 옆을 지나가던 지프차 한 대가 서더니 차에서 한 젊은이가 내렸다. 30대로 보이는 백인 남자는 내 차로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차가 후진할 수 있도록 앞에서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이가 아무리 밀어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부인인듯 한 젊은 여자가 지프차에서 내리더니 힘을 합쳤다. 두사람이 힘껏 밀어도 차가 빠져나오지 못하자 이번에는 여자가 자기 차로 가서 작은 눈삽을 들고 나와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눈삽으로 바퀴 주변에 쌓인 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칼바람 부는 날 눈을 맞으며 장갑도 안낀 맨손으로 바퀴 밑의 눈을 치우는 젊은이들이 안쓰럽고 미안해서 나는 괜찮으니 그대로 가시라고 몇 번씩 말했지만 막무가내.
한참동안 바퀴 밑에서 눈을 걷어낸 젊은이는 부인과 함께 앞에서 다시 차를 밀었다. 눈에 빠져 10분 넘게 오도가도 못하던 미니밴은 움찔 움찔 하더니 마침내 뒤로 후진 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면서 ‘이제 가시지요’ 하고 생면부지 모르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지만 이렇게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여러 해 전 겨울 워싱턴 포토맥 강에 사람이 빠졌을 때 지나가던 4대 남성이 옷을 벗고 높은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얼음이 둥둥 뜬 물에 빠져 하우적거리는 사람을 구해 나오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까운 주변에서도 직장이나 거리에서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써 가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부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부추겨서 미국을 잠시 이상한 꼴로 만들어 놓았지만 아직도 보통 미국인들은 선량한 다수를 이루고 있고 그것이 미국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같은 저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잠시 기울고 흔들려도 곧 복원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 아메리카를 축복하소서.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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