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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와 조수(2)

2021-03-02 (화) 심재훈 / 클락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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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민생활 20년 중,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젊어서 부터 글을 쓰는 재주는 부족해도 글 읽기를 좋아하는 습관은 아침에 받아 든 한국일보의 인쇄 냄새를 맡으며 대충 훑어보고 출근한 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면 그 시간부터 한국일보의 광고난 구석구석까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알뜰하게 읽는 일입니다.
신문 읽을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외워야지 돈도 안되는 신문은 왜 들여다보고 있느냐는 아내의 핀잔은 이미 소 귀에 경 읽기가 되어버린지 오래 입니다.

세상의 빠른 변화는 정보의 중심이 신문에서 셀폰으로 넘어 갔다고 하지만 꼰대인 저에게는 신문이 주는 정겨움과 안정감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것 같습니다. 나에게 신문이 주는 효과는 때로는 잊혀져가는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그리움의 경계 넘어 사람사는 향기를 품어 냅니다. 때로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잃어버린 젊은 날의 표상이 아련하게 다가 오기도 하고 시련의 사색에 빠지게 하는 힘도 있습니다. 이 소중한 것들은 돈이 되는 경제적 가치로만 계산될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이민자의 회상속에는 신문 기사에 내 고향의 지명이나 비슷한 친구의 이름이라도 나오면 혹시 내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려 지기도 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보고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 신문에 낯익은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 때마다 혹시 그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였지만 무조건 아닐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으로 치부하고 생각을 덮었습니다.
젊을 시절 품었던 문학의 꿈은 지지리도 부족하고 모자란 글 솜씨로 매년 응모하는 한국일보 문예 공모전에 낙선의 고배를 마시다 2019년 운좋게 당선의 영광을 맞이하였습니다.
신문에 사진이 나오고 청년시절부터 써놓은 당선소감을 기억하고 끄집어 내어 폼나게 썼습니다.
그 날은 메릴랜드 그린브리어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 앞에 앉아 허물어져가는 산 허리의 석양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늙어감을 더듬고 있던 그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순간 머리속으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군생활 특전사에서 있지 않았나요?”
아! 내 사수다!
첫 번째 질문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네”
“그럼 7공수 군수처에 근무하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야! 임마 나 최응길이야”
그는 내 사수였습니다.


태권도를 잘해 행정병이면서도 특전사 대표선수였던 사람, 미술에 뛰어난 소질을 지녀 부대의 조형물이 대부분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 휴가 나가서 내 변심한 애인을 만나 나쁜 사람이라고 외치던 용기 있던 사람, 때로는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기합을 주던 사람, 밤새워 써놓은 챠트가 맘에 안든다고 다시 쓰게 만들어 나를 힘들게 하며 꼼꼼하게 업무를 가르치던 사람, 다른 부서 고참병에게 시달림을 당하면 내 조수는 건드리지 말라고 내 방패가 되어준 사람, 식판에서 고기 건더기를 나에게 덜어주고 라면스프를 국에 타주던 사람, 돈이 필요하다고 고참병 낙하산을 대신 타던 사람, 나랑 같은 강원도 감자바우인 사람, 제대해서 자리 잡으면 연락하겠다고 해놓고 연락 한번 없던 사람.

내가 아는 최응길 병장의 기억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수의 버지니아 리스버그 USTMA 도장에서 40년 만의 만남은 이루어졌고, 밤을 새워 추억과 기억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고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불가능한 만남의 기적에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세월이니 형, 동생을 하자는 사수님 말을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지만 기억이나 추억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쉽게 맺어질 수 없는 관계, 쉽게 만날 수 없는 인연, 그 필연의 끝을 영원히 사수와 조수의 관계로 남고 싶습니다.
US태권도 아카데미 최응길 관장은 나의 사수이고, 글 쓰는 구두수선공 심재훈은 조수입니다.

<심재훈 / 클락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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