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
2021-02-25 (목)
김창호 / 일리노이대 명예 석좌교수 조지 메이슨대 초빙교수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왜곡 논문과, 관동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과 재일교포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문 기사가 40여년간 학문의 자유를 만끽하고 대학에서 은퇴한 필자에게 인간 존엄의 자유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은 공학자로서 역사학자는 아니며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읽지도 않았다. 다만 뉴스에서 들은 바 램지어 교수는 일본 정부에서 발행한 다수의 통계자료를 분석하여 결론을 얻은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곳은 미국일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럽과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한 필자는 미국 대학에서 후회없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보장해준 근간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학문의 자유 보장이 20세기 이후 미국이 세계의 학문을 선도할 수 있게 한 반석이 되었다 믿어 마지 않는다
그런데 학문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 중 어느 것이 형이상학적 상위일까?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라 생각된다. 각 개인의 자유는 악을 행할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어릴 때 왜 전지 전능의 조물주가 인간이 악을 행하여도 되게 만들었을까 생각하고 조물주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야 만약 조물주가 인간에게 악을 행할 자유를 안 주었다면 그건 진정한 자유를 준 인간이 아니고 로봇을 창조한 것이리라 깨달았다. 허나 내가 갖고 있는 자유로 남의 자유를 해치는 것까지도 자유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 할 것이다.
철학자 니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이 왜곡되어 우생학적 우월을 주창하는 나치즘에 의해 6백만 명의 유태인이 희생되었다. 많은 후대의 철학자들이 후에 니체의 철학이 왜곡되었다 증언하였지만 이미 많은 희생이 일어났다. 현재에도 특정 인종의 우월을 주장하며 미국 노예제도가 경제 발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대다수 있으며 로렌스 서머스는 미국 재무 장관을 역임한 후 하버드대 총장 시절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매춘부의 역할이 컸다고 주장했던 학자이다.
금년 1월 6일 미국 초유의 국회 의사당 난입 사건에도 타 민족을 멸시하는 나치즘의 후예인 백인 우월 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그들은 미국 헌법에 보장된 표현 및 언론의 자유 본질을 왜곡하여 타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였으며 현재도 그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나 아렌트’에서는 영화의 주 의제는 아니지만 학문의 자유와 인간 존엄의 자유가 충돌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영화는 실존 인물이며 유태인인 한나 아렌트 박사를 배경으로 다루었으며 나치에 동조한 은사인 하이데커의 ‘사유’ 사상에 입각한 학문의 자유를 토대로 장문의 글을 쓰면서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게 유리한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
즉 나치 전범 아이히만은 단지 “의무”를 다했을 뿐이며 위에서부터 내려진 명령과 나라의 법을 따랐던 것이라는 글을 썼다. 유태인들에게서 엄청난 비난과 살해 위험도 받게 된다. 하지만 궁극에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그를 국제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고 믿게 되는 줄거리이다.
각자의 자유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위안부의 당위성을 논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로 포장 될 수 없는 영역이며 그런 어떠한 행위도 최상위 인간의 존재 이유인 나와 이웃이 함께 공유하는 자유를 침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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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 일리노이대 명예 석좌교수 조지 메이슨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