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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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

2021-02-22 (월) 이현원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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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이 아무리 위세를 떨쳐도 봄에게는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혹독한 겨울이 가고 약동의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자로부터 봄이 온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이나 마음으로부터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 같으면 동백이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곳 북버지니아에서는 이런 꽃들을 보기 어렵다. 주위에서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라면 수선화나 개나리꽃 정도가 아닐까.

자연의 변화나 봄을 피부로 더듬어보기 위해서 이웃 공원이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된다. 작년 2월 중순 무렵이다. 아직도 잔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추운 날씨였다. 맥클린 동네 주변을 산책 겸 걷기 운동을 하다가, 어느 집 앞 정원에서 수선화와 개나리가 몇 송이 피어있는 게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떨고 있는 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기특했고 한편은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끝나지 않은 이 추위에 마치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칠삭둥이 어린애처럼 보였다. 또한 세상에 방금 나온 강아지가 눈 못 뜨고 엄마 품을 찾고 있는 듯이 보였다.

봄이 오는 소리치고는 맑고 경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봄이 아직은 멀리서 서성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올해 수선화의 꽃 피는 시기는 늦잠 때문인지 좀 늦어지는가 보다.
우리는 지난해 봄부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일 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지속했다. 집콕의 삶으로 생활 리듬은 망가지고, 정서는 메마르고, 어둡고 칙칙한 삶의 터널 끝은 어디쯤인지 보이질 않는다. 지루한 격리생활은 여기나 고국이나 마찬가지다. 지인 간에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의 메시지나 영상을 주고받는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친구가 보내준 사연과 사진에서 봄의 짜릿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서울 탄천 둔치를 지키고 있는 버드나무가 벌써 어슴푸레하게 유록색(柳綠色)을 띠어가고 있단다. 이미 봄 마중 준비를 하고 있음이다. 개천에서 꺾어다 놓은 버들강아지는 방안에서 연두색 꽃을 피웠다. 그 꽃을 확대해 보내주었는데 꼭 콩나물이 다듬잇방망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듯하다. 오손도손 키 자랑하는 노란 나물들이 깜찍하다. 그 버들강아지는 콩나물을 기르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 세상천지에, 밖에는 함박눈이 내려도, 콩나물이란 옥동자를 낳아 정성스럽게 보듬고 있다.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품는 시루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그가 바로 봄을 손짓하며 가까이 부르고 있는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차가운 가슴을 녹여주는 훈풍이고, 봄이 가까이 왔다는 명징한 울림이다.

팬데믹 세상에서도 봄은 온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을 가둘 수 있어도 봄은 가두지 못한다. 봄을 기다리는 꿈마저 가두지는 못한다.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희망의 끈까지 버리지는 말자. 모진 추위를 견뎌내는 개나리나 보리, 마늘, 양파 같은 춘화현상(春化現象) 식물이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 어둠 끝에 빛이 있게 마련이다.
봄이 오는 소리, 희망의 복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봄의 행진곡이 가까이서 들려오지 않는가.

<이현원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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