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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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떡 마당을 만들면 어떨까

2021-02-21 (일) 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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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설날 잔치는 수증기가 가득한 방앗간에서 시작된다. 할머니가 간절한 염원과 소망으로 떡살을 담가 방앗간에 가져가면 조그마한 기계에서 수증기를 뿜으면서 하얀 가래떡이 줄줄 흘러 나온다.

복(福)도 길게 늘이고, 명줄(命줄)도 길게 늘인다는 가래떡. 묵은 해를 보내고 천지만물이 갱생부활(更生復活)하는 새해 첫날, 새하얀 가래떡처럼 순수하게 깨끗한 새해를 시작하는 의미에서 온가족이 모여 덕담 나누면서 가래떡국을 먹는다.

백의민족의 평온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흰 가래떡은 여성적이다. 한아름에 안길듯 유연하며 백옥같이 쭉 뻗었다. 매끈하고 말랑말랑하여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름다운 색감과 백미, 흑미, 홍미, 쑥, 호박의 천연색 배합으로 빚은 오색가래떡은 색동저고리처럼 화려하고, 무지개처럼 황홀하다.


숯불에 구운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었던 추억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나온다. 숯불에 구우면 까무잡잡하게 그을리면서 툭 터지는 흰 속살은 여리고 관능적이다. 쫀득쫀득 입속에서 감칠나게 맛깔스런 뒷맛은 첫 키스의 맛이며, 만두나 송편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가래떡은 치즈와 함께 먹어도 일품이다. 가래떡과 치즈의 조합! 동서양의 환상적인 조합 같다. 동서양 사람들이 설날 아침 함께 모여 조청과 치즈로 가래떡 먹으면서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을 위한 대화의 마당-가래떡 마당-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가래떡은 둥글어 모난 데가 없고 나긋나긋하다. 게다가 사교적이고 친화적이어서 볶고, 굽고, 조리고, 튀기기 좋은 식재료이다. 정성만 있으면 누구나 부담없이 음식을 만들수 있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즐기는 한국인의 대표 간식과 야식, ‘떡볶이’로 환생했다.
가래떡은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고 가족, 이웃과 더불어 정을 나누며 먹는 새해 첫 음식이다. 조상들은 긴 가래떡에서 무병장수를 빌었다. 흰색에서 밝고 희망찬 새날과 재물이 죽죽 뻗어 나가기를 염원 했다.

가래떡은 누구나 쉽게 썰 수 있지만, 많이 썰기는 쉽지 않다. 설을 쇠고 나면 어머니들은 몸살이 난다. 오른손과 왼손이 화합하여 만들어 낸다. 손으로 단단히 잡고 리듬을 타며 썬다. 손목으로만 써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정성을 쏟아서 썬다.

정성이 부족하면 떡을 예쁘게 썰 수 없다. 떡을 예쁘게 썰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했다. 떡을 써는 우리 어머니들의 손은 약손이며 타고난 예술가 손이다. 그래서, 한석봉 어머니의 솜씨가 놀랍다. 죽림정사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모친이 보고 싶어 10년을 못채우고 3년만에 돌아왔다.

홀어머니는 호롱불을 끄고도 똑같은 크기로 보기 좋게 떡을 썰어 엉망으로 글씨를 쓴 아들을 야단쳐서 다시 산으로 돌려 보낸다. 자만한 석봉은 혼(魂)이 아닌 손끝으로 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온몸으로, 지극정성으로 떡을 썰었을 것이다. 한석봉 어머니는 영구불변 우리의 어머니이다.

새해 아침 떡국을 먹으며 건네던 어르신들의 덕담, 맛깔스런 음식을 온몸으로 차린 어머니의 손길. 그래서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나 보다. 또한, 어르신들은 떡국을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하는 떡이라고도 했다. 떡국은 먹되 나이는 더 이상 먹지 않으면 좋겠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쉽지 않는 이민 생활. 특히, 방역 수칙 잘 지켜야 되는 팬데믹 세상. 설날 아침 흩어져 사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냉동 가래떡을 해동하여 만든 떡국 이라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아닐까?

언택트(Untact) 세상에 어울리게 설날 아침 가래떡국 상 차려 놓고 랜선(Lan Cable)으로 지내야 하나? 40년을 같은 방에서, 같은 침대 함께 사용한 천사(?)의 온정 담긴 손길과 솜씨로 조리한 가래떡국을 이번 설날 아침에도 잘 먹었다.

<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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