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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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과 성실

2021-02-17 (수)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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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 단원들이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고 여러 봉사 활동을 하였는데 그들이 후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60년대의 한국은 제 3 세계였고 수돗물도 없었고 화장실은 열악 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들에겐 화장지라는 개념이 도무지 없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학생들은 외투를 입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근면하고 성실 하였어요”라고 기술하였다.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일제 강점기때 북간도에 살고 있던 조선족들이 스탈린에 의해 하루아침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을때 조선인들을 오랫동안 지켜 본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러시아의 한 관리가 죽음을 앞두고 자기 가족에게 유언을 하게 되는데 “절대로 조선인들을 해꼬지 하지 말라. 저들은 대단히 근면하고 성실 하며 무서운 민족이다”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엄동설한에 중앙아시아로 내팽개진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일대에서 조선인 하면 농사를 제일 잘 짓는 민족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지켜 본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민족으로 각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해 있으므로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온 힘을 다해 농사 짓지 않으면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 위한 음식으로 김치, 장아찌, 말랑이 등이 잘 발달 되어 있나보다.
‘개미와 베짱이’ 의 이솝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들은 개미처럼 여름내내 땀 흘리며 부지런히 일하여 가을에 추수해서 겨울을 견디어내었고 베짱이처럼 여름 나무 그늘 밑에서 노래나 부르며 놀고 있는 민족은 아니었다.


한국 바로 위쪽에 세계 4대 문명 발생지 중의 하나인 무소불위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있다. 중국으로 부터 한자라는 문자를 가져왔으며 주판, 저울 등 많은 것이 도입 되었다.
또한 가정과 효도와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라는 종교가 우리들을 수백년 동안 지배하여 왔다. 우리 한국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녀교육을 위헤서는 그 어떠한 것도 양보할 수 없는 교육열 인데 이것 또한 유교에서 비롯되었다.

1910년대 함경도 원산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독일인 신부가 조선인들이 주판을 이용하여 덧셈, 뺄셈은 물론이고 나누기, 곱하기 등 계산을 정확하게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기록한 일지를 본 적이 있다.
중세 유럽은 문맹율이 아주 높았으며 소수의 성직자만이 문자 해독이 가능하였지만 유대인들은 자기 고유의 문자로 읽고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모든 문서를 자기들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우리들도 세종대왕에 의해 창제된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과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근면과 성실이라는 두 단어를 알려면 우리 부모 세대를 보면 산교훈이 된다. 일제식민지 시대, 전쟁, 혁명, IMF 사태 등 격랑과 혼돈과 상실의 시대를 보냈고 인고의 세월을 산 우리의 부모세대는 우리들에게 근면과 성실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여우를 피하면 범을 만난다” 라고 자주 말씀 하셨는데 자기 할일을 제 때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면 나중에 더 큰 감당 못 할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나의 아버지는 삶 자체가 근면과 성실이었다.
가족에 대한 자기 헌신과 희생으로 사랑의 울타리를 만들어주셨고 바다 같이 깊고 넓은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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