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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의 계산’ ‘가슴의 질문’

2021-02-1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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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항상 계급적 이익에 따라서만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회과학적 연구와 의식조사 등을 통해 누누이 확인됐다. 누구에게 표를 줄까 고민할 때 경제적 득실을 따지기도 하지만 이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 혹은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를 우선해 표를 줄 대상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변해 주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보수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대개 보수정당들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자신들의 분노를 투사할만한 대상을 던져주는데 아주 능숙하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더 극대화시켜줄 정치세력을 지지하기보다 진보정당의 가치에 더 공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많은 대화를 나눈 한 기업인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 대선과 조지아 주 연방상원 결선투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그는 바이든과 민주당이 승리하자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이 백악관과 연방의회를 장악하면 증세가 현실화되고 자신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한데도 말이다. 그는 경제적 득실을 계산하는 머리는 공화당을 향하지만 어떤 선택이 미국을 위해 옳은가라는 가슴의 질문에는 민주당으로 대답이 기운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는 시장의 자율적인 손에만 맡겨서는 해소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국가의 개입과 조정이 불가피하고, 이것을 계속 회피하거나 미룰 경우 결국은 구성원 모두가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세금정책과 복지,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다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보건 경제위기 속에서 드러난 사회경제적 모순들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온통 잿빛뿐인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이런 주장과 관점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인 징후이다. 수십 년 동안 진보가 그처럼 소리 높여 외쳤어도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코로나바이러스가 단숨에 해내고 있다는 ‘웃픈’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역사 속에서 대위기의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사회를 되살리는 ‘위대한 합의’를 이뤄낸 경험이 있다. 불평등과 착취 위에 서있던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보다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한 개혁의 기치에 모든 구성원들이 동참했던 1930년대 대공황 시기가 바로 그랬다. 패러다임의 대변혁과 개혁성과는 이후 미국의 수십 년 간에 걸친 번영의 토대가 됐다.

미국은 지금 이런 ‘위대한 합의’를 또 한 번 이뤄내야만 할 절박한 상황 속에 놓여있다. 팬데믹 이전 같으면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품을 물며 반대했을 코로나19 구제 프로그램이 별 저항 없이 시행되고 있다. 새로운 민주당 정부의 출범으로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경제 입법과 정책이 마련될 여건도 어느 정도 조성됐다. 불평등에 눈을 감아온 정치가 끝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안겨준다.

역사학자 마가렛 오마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보다 집단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게 궁극적으로는 더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전 소득계층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현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보통 두 가지 전략을 취한다. 하나는 ‘지배의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친화의 전략’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친화의 전략’보다는 ‘지배의 전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사회를 움직여온 것은 금권을 통한 ‘지배의 전략’이었다. 그 결과는 끝없이 벌어진 경제적 격차와 계층 간 갈등이었다.

팬데믹을 지나며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공동체적 가치는 ‘친화의 전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분위기가 실질적인 개혁과 변화로 이어지려면 ‘계급의 이익’이라는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는 부자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머리의 계산’에 앞서 ‘가슴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바란다. 그럴 때 ‘친화의 전략’은 우리 사회의 가치로 한층 더 폭넓은 수긍과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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