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영상은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 만큼 강렬했다. 1월6일 폭도들의 연방의사당 난입 현장과 그들의 의사당 집결을 촉구한 트럼프의 선동적 연설 장면, 대선결과 인증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 중 뒤늦게 위기를 깨닫고 다급하게 몸을 숨기는 의원들의 모습을 시간순으로 교차 편집한 13분짜리 동영상은 그날의 섬뜩했던 충격을 상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탄핵심판이 시작된 9일, 헌법학 교수 출신의 하원 탄핵소추위원단장 제이미 래스킨 의원은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 동영상을 지켜본 상원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 “우리 헌법에서 (탄핵사유에 해당되는) 고도의 범죄와 비행이 무엇인지 물었는가? 만약 이것이 탄핵당할 범죄가 아니라면 탄핵 사안이란 없다”
“의사당으로 가라” “죽기 살기로 싸워라, 안 그러면 당신들의 나라는 없다”는 대통령의 연설에 광분한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위해 싸우자” “펜스를 목매달라”고 외치며 의사당을 때려 부수고 난입·점거하는 폭동이 생생하게 재연된 후, “트럼프 연설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할 정치적 연설”이라는 트럼프 변호단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었다.
트럼프 변론은 트럼프의 분노를 살 정도로 부실했고 민주당 하원탄핵소추위의 감성호소 전략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양극화 정치에선 별 소용이 없음은 이날 실시한 퇴임 대통령 탄핵심판의 합헌성 여부 표결에서 바로 재확인되었다. 56대44의 합헌 결정이었으나 공화의원 44명이 ‘위헌’ 주장으로 탄핵을 반대했다. 탄핵안은 공화의원 34명만 반대하면 부결된다.
만약 무기명투표라면 “트럼프는 의심할 바 없이 유죄평결을 받을 것”이라고 정치학자 일레인 카마크는 단언한다. 탄핵심판의 배심원이자 폭동을 온몸으로 체험한 현장 목격자들이기도 한 상원의원 중 트럼프의 연설을 ‘선동’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극히 드물 것이다.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도 민주당 못지않게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소멸을 원한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2022년, 2024년 선거에 미칠 트럼프의 보복이 두려워 될수록 입 다물며 트럼프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재판 형식으로 진행될 탄핵심판은 ‘내란 선동’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양측의 뜨거운 공방으로 치달으며 며칠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새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탄핵안 부결이라는 심판의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는 퇴임했고 무죄평결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왜 굳이 탄핵심판을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의회의 의무라는 근본적 이유에 더해 정치적 의도도 있다. 장외 배심원인 여론을 겨냥한 호소다. 여론의 56%는 트럼프의 유죄평결과 공직 자격박탈을 지지한다.
탄핵심판에서 패한다 해도 민주당은 트럼프의 유죄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는 한편 이런 트럼프를 눈감아주고 있는 공화당의 떳떳치 못한 정치적 계산을 보여주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첫날 공개된 동영상은 탄핵심판 기간 중 내내 TV로 반복 방영되면서 ‘트럼프의 명백한 범죄 행위와 범죄 의도’를 강조할 것이다. “그가 무죄평결을 받은 후에도 사람들은 이 과정을 통해 밝혀진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민주당 상원의원 리처드 블루멘탈은 말한다.
‘트럼프 지지 난동’의 재 공론화가 부담되는 공화당과 바이든 새 행정부 주요과제 처리의 차질을 우려하는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어서 탄핵심판은 속전속결이 예상된다. 이르면 내주에 트럼프는 상원으로부터 또 다시 탄핵 부결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퇴임 대통령의 탄핵보다 민주당의 더 현실적 타겟은 트럼프의 향후 공직 출마권 박탈이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이어서 향후의 공직 자격박탈안을 단순과반수로 가결시킬 수 있다. 3명의 연방판사들이 이런 절차를 통해 탄핵과 공직권 박탈을 당했었다.
탄핵 부결 시 공직 자격을 박탈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지만 부결 후 박탈시킨 전례도 없다.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는 가능해지는가. 공직권을 박탈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미합중국에 대한 반란이나 반역에 연루된 자는 공직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 3항이다. 남북전쟁 후 남부연합 지지자들의 공직 진출을 막기 위해 입법화 되었다. 14조 5항은 의회에 ‘적절한 입법’ 통한 자격박탈 집행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일부학자들은 의회가 트럼프 같은 특정 대통령에 대한 공직 자격박탈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1919년 의회가 이 조항을 적용해 미국의 1차 대전 개입에 반대했던 하원의원 당선자 빅터 버거의 취임을 막은 전례도 있다. 그러나 “매우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이라고 지적한 미시간 주립대 브라이언 칼트 법대교수는 “입법과 소송이 다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격박탈을 당할 경우 트럼프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판결될 것이라는 의미다. 탄핵은 정치적 문제라며 선을 그어온 것이 과거 대법원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명한 3명의 신임 대법관 합류 후 6대3의 절대보수 구도로 정착한 현 대법원의 시각도 같을지는 미지수다.
여느 대통령이었다면 정계에서 물러났을법한 물의를 몇 번이나 자초하고도 막무가내로 살아남은 트럼프의 정치생명은 이번에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더 트럼프를 보고, 듣고, 견디어야 할 것 같은 예감에 미국의 과반수가 시달리는 요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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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