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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같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위난’

2021-02-10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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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에서 발생하는 가정 문제는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한인들은 생계와 자녀양육을 위해 부부가 함께 소규모 비즈니스를 꾸려가며 비지땀을 흘려왔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하는 가게를 뜻하는 ‘맘 앤 팝 스토어’들이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가 같이 일하면서 부부로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가 한 공간에서 일한다면 대단히 바람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 배우자는 가장 손쉬운 화풀이 대상이 된다. 부부관계도 어느 정도 ‘파워게임’의 양상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부부가 같이 일하다 보면 그 양상은 더욱 치열해 지곤 한다.

부부가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공간에 너무 오래 같이 있는 것도 문제다. ‘너무 많이 같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위난들’(Perils of Too Much Togetherness)이라 불리는 관계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 ‘Togetherness’는 부부관계의 기본요소이지만 문제는 ‘Too Much’에 있다. 부부간에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적당한 간격이 있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평소 그런대로 유지돼오던 부부관계가 은퇴 후 악화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팬데믹이 시작된 후 실업자가 늘고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부부가 함께 집에서 보내야하는 시간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그런 가운데 부부 사이의 불화가 심화되고 파경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잠깐 보고 저녁 잠자리 들기 전 몇 시간 정도만 시간을 같이 보내던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적응에 어려움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법률서류들을 제공하는 한 대형 온라인 사이트는 지난해 제공한 이혼합의 서비스 건수가 전년에 비해 무려 34%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영국 등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불화는 금전 문제와 재택근무 적응, 그리고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발생하는 경우들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억눌러왔던 가사 분담에 대한 한쪽 배우자의 불만이 폭발해 갈등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불만과 갈등이 고개를 들 때 이전 같으면 여행이나 사교활동 혹은 일 등을 통해 이를 외부에서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정지되고 막혀버린 팬데믹 시기에는 이것을 풀어버릴 방법이 여의치 않다.

이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결혼생활의 불화와 파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모든 것을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게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 사이가 원만하고 비슷한 가치를 공유한 부부들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금슬이 좋아진다. 불화의 씨앗을 안고 있던 부부들이 팬데믹으로 생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뿐이다.

팬데믹 파경은 평소의 이혼보다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최악의 선택에 이르지 않도록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불만이 고개를 들더라도 상황과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한편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해 주는 루틴과 패턴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은퇴 커플들을 상담해주는 심리전문가들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부부들에게 어린아이들의 ‘병행놀이’(parallel play) 방법을 적용해 볼 것을 권고한다.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놀면서도 서로의 행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놀이 방식을 말한다. 가령 모래 통 안에서 남자아이는 장난감 트럭을 가지고 놀고 여자아이는 버킷과 삽으로 모래성을 쌓으며 각자 놀 듯 말이다. 팬데믹으로 의도치 않게 은퇴 비슷한 패턴의 생활을 하고 있는 커플들에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묵은 갈등을 끄집어내 이를 해결하겠다며 싸우고 갈라서기에 팬데믹은 그리 좋은 시기가 아니다. 팬데믹 불화가 ‘너무 많이 같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위난’이라면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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