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마태복음 25장 29절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경제력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얻는 현상을 관찰하고 여기에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태효과’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자주 인용된다.
1980년대 이후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미국사회의 경제적 격차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적절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가진 사람은 갈수록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면 빈익빈부익부가 한층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지난 30여 년 동안 상위 1%의 실질소득은 연간 205%, 특히 상위 0.001% 소득은 636%씩 증가해왔다. 복리로 계산해보면 천문학적 액수가 된다. 반면 같은 기간 하위 50%의 인플레를 고려한 연 평균 임금은 성인 1인당 1만6,000달러 수준에 그대로 머물렀다.
이미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서버린 미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은 팬데믹을 지나면서 더욱 벌어졌다.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가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지난해 3월 중순 이후 1조1,000억 달러(1,215조원)나 증가했다. 무려 40%가 늘어난 것이다.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은 초현실적인 액수의 돈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불렸다니 ‘마태효과’라는 설명만으로 그냥 지나치기는 힘든 위화감이 고개를 든다.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거시경제 수치는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나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 수치나 비유로 설명할 때 한층 더 이해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인 로렌스 캇츠 교수의 계산과 비유는 아주 적절해 보인다.
몇 년 전 그는 한 경제포럼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소득격차가 얼마나 심화돼 왔는지를 실감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만약 어떤 놀라운 마법이 일어나 미국 상위 1%의 부 점유율이 1979년 당시로 되돌려지고, 그 차액을 하위 90%에 골고루 나눠준다면 1인 당 9,000달러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화됐음을 고려할 때 캇츠 교수의 계산법을 지금 적용해 본다면 액수는 1인 당 1만 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더 실감나는 것은 캇츠 교수가 든 비유이다. 그는 불평등한 미국사회를 흉물스러운 아파트 모습에 비유했다. 아파트 꼭대기에는 번쩍거리고 호사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펜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아파트는 허름해지고 초라해진다. 맨 밑바닥 지하실에 이르면 침수가 돼 더러운 물이 넘치고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등 최악의 상태이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아파트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기란 어렵다. 맨 꼭대기 펜트하우스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외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할지는 의문이다.
어떤 동네를 운전하고 지날 때 허름한 집들 사이로 높다랗게 지어진 주택이 생뚱맞게 서있는 것을 가끔 본다. 집 주인은 주변의 초라한 집들과 비교하며 심리적 우월감을 맛보려 이런 집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주변 환경과 너무 어울리는 않아 그냥 볼썽사나울 뿐이다. 큰집 작은 집이 섞여 있다 해도 어느 정도 조화를 이뤄야 보기에 좋고 평화로워 보이는 법이다.
한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격차와 불평등이 적절한 관리되지 못할 경우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웰빙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불평등이 초래하는 신뢰의 손상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만든다. 그 결과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방해한다. 이런 쓸데없는 비용이 늘어나다 보면 장기적으로 경제적 성장까지 저해할 수 있다.
경제적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서 미국사회는 날로 파편화되고 있다. 무엇이든 너무 잘게 깨져버리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가 힘들어진다.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해지기전에 침수된 미국아파트의 지하실에서 물을 빼내고 아래층부터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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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