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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와의 대화

2021-01-24 (일) 문일룡 / 변호사, V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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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30살 전후의 아들이 두 명 있다. 큰 애는 동북부 그리고 작은 애는 서북부에 산다. 두 형제가 닮은 점도 많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점들도 있다. 항상 의젓하게 느껴졌던 큰 애와는 달리 둘째는 무언가 내가 좀 더 챙겨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끔 한다. 반면에 둘째는 큰 애보다 다정다감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부모에게 전화를 준다. 건강 여부도 확인하고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대화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애를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도 제법 엿볼 수 있게 된다.

대학을 동북부 그리고 대학원을 중부에서 마친 둘째는 직장 만큼은 서북부에서 잡기를 희망했다. 대학원 재학 중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일찍이 접었는데 적어도 몇 년 간은 젊은 사람들의 선호 지역인 서북부에서 살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미 그 지역에서 직장 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다녔던 형과 고교 친구들로부터 그 지역의 좋은 점들을 익히 들었던지라 대학원에 다니면서 유일하게 가졌던 인턴십 기회도 일부러 그 지역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인턴십을 했던 곳으로부터 졸업 후의 첫 일자리도 제안 받았다. 인턴십을 하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근무 환경과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채 안 되어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첫 직장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 보다는 새 직장에서의 일이 본인의 대학원 논문 내용에 더 연관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첫 직장은 그다지 크지 않은 회사인 반면 옮기게 된 직장은 세계적인 기업이라서 대기업 체험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대기업에서 채용하는 만큼 대우도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해 준다고 했다. 나는 첫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이 너무 짧은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지만 둘째가 설명하는 이직 이유에 타당성이 충분히 있어 보여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하기 시작한지 아직 1년이 안 되었는데 또 이직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에 둘째가 전화 해 올 때마다 이유와 진행 상황도 물어보고 내 생각도 나누게 되었다. 이직에 대한 큰 이유 중 하나는 동부로 돌아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모나 형 모두 동부에 살고 있으니 가까이 오겠다는데 대해 내가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할 것이다. 내 욕심으로는 아예 부모가 사는 워싱턴 DC 근처로 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을 지금 바라는 것은 분명 과욕이니 우선 본인이 선호하는 뉴욕 지역으로만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러나 나와 둘째 사이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내가 구해 주는 직장도 아니고 내가 둘째의 장래를 책임져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나름의 충고를 안 할 수 없다고 느꼈다.

동부로 오겠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나 지금 일하고 있는 기업의 뉴욕 지역 팀을 찾아보는게 어떻겠느냐, 큰 회사의 근무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주위 친구들이나 다른 젊은이들의 잦은 이직이 주는 자극은 이해하지만 큰 회사 근무 이력도 네가 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이렇게 이직을 자주 하는 이력을 미래의 고용주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네가 고용 담당자라고 가정할 때 1년에 한 번씩 직장을 옳기는 것을 볼 경우 새 직장에서는 과연 얼마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느냐 등등 내 의견과 생각해 봄직한 점들을 피력했다.

내 말을 듣는 둘째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또한 나름대로 이직 이유에 대한 논리도 내세운다. 그리고 내가 지적한 점들도 물론 다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얘기들을 서로 여러 번 반복 하다가 내가 “We do not have to decide it today”, 즉 우리가 오늘 결정할 필요는 없지 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에 대한 둘째의 반응이 따가웠다. “It is not ‘we’.” “’I’ do not have to decide it today” 라는 것이었다. 결정은 아버지와 공동으로 하는게 아니라 자기 혼자만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문일룡 / 변호사, V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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