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사람이다. 이는 예전부터 지인들을 통해 많이 들은 바다. 예를 들면, “사람보다 사물 특히 신발을 사랑하는 것 같다”, 때로는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요새 한창 인기몰이 중인 싱어게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데, 나는 그저 사람들의 이런 감정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 같다.
결혼 후 석달간 옆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한 아내는 나에게 ‘로봇감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만큼 내 감정의 변화가 단순하고 매우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로봇감정’인 내게도 한 해를 마무리할 때 항상 드는 감정과 질문이 있었다.
“올해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 그리고 올해는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항상 내게 있었다. 이는 매 연말마다, 반복해서 들었던 감정이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내가 더 치열하게 악착같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지 못해서 든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이 싫어 새해가 되면 혹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노트에 열심히 적어보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고 싶은 바들을.
작년 말에도 이런 생각들을 적어 둔 노트를 몇 장 넘기다 과거의 기록들을 뒤돌아보며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2020년을 마무리하면서 든 감정은 신기하게도 허무함도 아쉬움도 아닌 감사함이었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다면 내가 정말 로봇이겠지만 감사함이 다른 감정이 설 자리를 주지 않았다.
만약 예년과 같은 관점으로 작년 한 해를 돌아봤다면 아쉬움에 허무함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원래 목표로 했던 직장 내 커리어 전환, 책 저술은 진척이 전혀 없었고, 코비드로 인해 지인들과 물리적 만남, 자유로운 여행 등 평소에 하던 일들조차 하나 제대로 못하고 지나친 것 같은 2020년 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아프지 않고, 재택근무도 잘하고 있고, 인생에서 가장 큰 중대사로 일컬어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또한 했기에 크게 감사한 점도 있었지만,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나의 삶을 평가하는 척도가 달라진 점이 이런 감정의 변화를 불러온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어떤 점들이 감사한가로 질문을 바꿔보니 아쉬움 허무함은 설 자리가 없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새로운 친구와 공동체가 생겨 감사하고, 지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서로 기도해 줄 수 있어 감사하고, 같은 일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녀가 생겨 감사하고,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감사하고, 항상 연락 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고, 부족함을 매일매일 깨달을 수 있어 감사하고… 정말 감사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 끝이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쉬움의 관점이 아닌 감사함의 눈으로 2020년 한 해를 뒤돌아볼 수 있어 감사하고, 2021년도 그래서 이루지 못할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데 연연하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작년 연말 그리고 올해 초 이러한 나의 감사함을 담은 짧은 글을 지인들과 나누다 보니, 지인들이 로봇도 요새는 AI가 발전해 인간과 감정 교류가 가능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가짜로봇(인간)인 내가 AI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배우는 진짜로봇보다는 2021년 새해에 타인의 감정을 더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는 덜 딱딱한 ‘로봇감정’의 소유자로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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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