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급한 또 하나의 ‘집단면역’

2021-01-0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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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의료 위기와 삶의 고비를 넘어 우리는 또 다시 새해의 출발선에 섰다. 지난 한해 지구촌을 엄습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오랫동안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패러다임들을 크게 흔들고 전복시키며 새로운 사고와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달라졌거나 앞으로 달라지게 될 가치관이 우리 앞에 던지는 도전과 그것에 맞서야하는 과제는 결코 녹록치 않다. 이런 도전과 과제 앞에서 2021 신축년을 맞는 마음이 마냥 밝을 수만은 없다.

새해의 출발선에서 우리는 각자의 소원과 소망을 품는다. 그 바람과 목표는 개인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내용과 모습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신축년 새해 모두의 소망은 예외 없이 구체적인 공통분모 위에 서 있다. 팬데믹의 종식이다. 팬데믹이 통제되지 않는 한 우리가 원하고 추구하는 삶의 목표들은 성취가 힘들거나 설사 이룬다 해도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통스러운 팬데믹의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거짓의 바이러스가 그것이었다. 무지하고 사악한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져 유포되고 확산된 거짓의 바이러스는 팬데믹과의 전쟁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죽지 않아도 됐을 억울한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한동안 대선결과를 둘러싼 거짓과 허위정보를 퍼뜨리는데 혈안이 됐던 극우 음모론자들은 트럼프의 패배가 사실상 확정되자 또다시 팬데믹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신과 관련한 거짓과 괴담 유포에 나선 것이다. 백신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기위한 온갖 허위정보들을 퍼뜨리고 있다.

백신 괴담 유포자들을 보면 대부분 대선 음모론자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음모론 생산과 유포를 소명인 양 여기는 인간들 같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상당수가 변호사 등 최고 명문대를 나온 부류들이라는 사실이다. 많이 배웠지만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 인간들이 교묘하게 만들어내는 음모론(혹은 프레임)을 무지한 대중이 추종하는 패턴이 나타난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미국인들의 비율은 여전히 높다. 조사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비율은 30% 내외에 달한다. 음모론자들이 퍼뜨리고 있는 거짓과 허위정보의 영향이 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인구의 70% 정도가 항체를 보유해야 집단 면역효과가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집단 면역효과를 얻는 데는 자연적 집단 감염보다는 백신 접종이 훨씬 효과적이며 희생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백신을 맞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아니 실질적으로 유일한 코로나19 퇴치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거짓과 괴담 유포자들은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 괴담이 너무 빨리 퍼지자 소셜미디어 플랫폼 규제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이 대책이 되지 못한다, 거짓은 바퀴벌레와 같아 아무리 막아도 어떤 형태 어떤 방법으로든 숨어들 곳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이런 거짓과 허위정보가 우리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고 망가뜨리는 것을 막아줄 백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거짓과 사실을 가려내고 구분해 낼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상식과 분별력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을 깨우쳐 주면서 시민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의 핵심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태도이다. 수십 년 간 세계 각국에서 감염병과 싸워온 전문가인 조너선 퀵은 “감염병 퇴치를 위한 최고의 백신은 지도자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러면서 지도자의 가장 나쁜 초기대응 태도로 “부인과 우유부단, 불신”을 꼽는다.


지난 한해 우리가 끔찍하게 경험하고 목도했던 바로 그 리더십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지도자의 태도와 그런 지도자를 신뢰하면서 상식을 따르는 시민들의 의식이야말로 감염병 퇴치를 위한 최고의 백신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거짓과 허위정보에 대한 집단 면역율을 70%로 높이는 일이다. 그래야 거짓의 바이러스에도 끄떡없이 견뎌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집단 면역이 성공적으로 형성될 때 비로소 코로나 팬데믹의 이른 종식과 재발 방지가 가능해질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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