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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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성탄절은 봄이 머무는 언덕에서

2020-12-24 (목)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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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갑갑한 생활은 결국 성탄절까지 이어졌다. 그런고로 올해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떠들썩한 대화 없이 원고를 쓰며 홍대용과 함께한다.

1766년 천주당을 방문한 실학자 홍대용은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보았다. 일 년 전 서른다섯의 나이로 북경에 다녀온 후 이국의 음악에 비상한 흥미를 갖게 된 그는 짧은 관찰로 악기의 구조를 꿰뚫어 보고 금세 연주법을 익혀 파이프오르간으로 거문고 곡을 연주하고 알파벳 도레미파솔라시가 적혀 있던 신문물, 양금도 해독한다. 당시 양금에 대한 유경종의 묘사는 이러하다. ‘어떤 이의 집에서 우연히 서양금을 보게 되었는데 제도가 괴이하였다. 대나무로 만든 채 두 개로 현을 치면 그 음이 쨍그랑 귀에 가득하고, 맑고 상쾌하여 매우 신비하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양금의 기원은 고대 중동지역으로, 10~12세기경 로마 제국 시대에 십자군에 의해 유럽 전역에 전파된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전신인 덜시머(Dulcimer)이다. 유럽에서 전래하였다 하여 구라철사금 또는 구라철현금으로 불리는데 국악기 중 유일하게 쇠줄을 가진 타현악기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이 악기는 사다리 모양의 상자 위에 두 개의 긴 괘를 세우고 쇠로 된 현 56개를 얹는다. 양손으로 대나무 뿌리로 만든 채를 톡톡 치며 연주를 하는데 줄의 개수가 많으며 조율이 까다롭고 복잡하다. 천주실의의 저자 마테오 리치에 의해 명나라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청으로부터 소개되었다.


남산 기슭의 작은 집 정원, 봄이 머무는 언덕이라는 뜻의 유춘오(留春塢)에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채 음악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던 홍대용이 있었다. 초연한 초가집의 아름다운 동산에 벗들과 함께 가야금과 거문고, 양금을 연주하며 흥취를 돋운다. 연암 박지원은 이 한바탕의 운사를 이렇게 기록했다.

‘밤이 깊어지자 흐르던 구름이 사방에서 뭉치고, 더위가 잠시 물러가자 소리는 더욱 맑아졌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선가에서 오장에 깃든 신을 내관하듯, 참선하는 승려가 전생을 돈오하듯 고요하게 침묵했다.’

눈을 감으면 보일 듯한 홍대용의 아름다운 봄이 머무는 언덕에 마테오 리치의 선물, 양금의 청아한 소리가 가야금을 벗 삼아 고즈넉이 울려 퍼지는 것을 상상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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