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약한 관계’의 강한 힘

2020-12-23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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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으로 봉쇄와 통제가 다시 강화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온종일 집안에 갇힌 채 일하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격리와 재택생활이 갈수록 길어지면서 외로움과 고립감 같은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울해지기 쉬운 연말에 가끔 걸려오는 안부전화들은 자신이 세상과 여전히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확인시켜 준다. 특히 평소 접촉이 뜸했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반가움은 두 배가 된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관계전문가들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들려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별로 없고 너무 끈끈하지도 않은 캐주얼한 인간관계를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이 삶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갖는데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약한 유대관계’(weak ties)를 넓게 맺으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예로 드는 것은 아이들 학교 픽업 때 마주치는 다른 학부모들이나 단골 카페의 바리스타, 그리고 강아지 공원에서 가끔 만나 대화하는 사람들이나 취미클럽 회원 같은 관계들이다. 친구 때문에 알게 된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유대관계를 폭넓게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2014년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약한 유대관계’가 정서적 혜택을 줄 뿐 아니라 구직 등 실생활에서까지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 통념을 깨는 이런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스탠퍼드의 사회학자인 마크 그라노베터였다. 그는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동료와의 관계를 ‘강한 유대관계’라 일컫고, 우연히 알게 돼 안면 정도만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는 ‘약한 유대관계’로 정의했다.

그라노베터는 작업을 바꾼 지 얼마 안 된 전문직과 기술직, 관리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바탕으로 발표한 ‘약한 고리의 강한 힘’이라는 논문에서 ‘강한 유대관계’보다 ‘약한 유대관계’의 도움으로 새 직장을 얻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신뢰할만한 친구나 동료가 도움을 주었다고 밝힌 사람은 17%였던 반면 28%의 응답자는 새 직장에 대한 정보를 유대관계가 별로 끈끈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응답했다.

그라노베터는 ‘강한 유대관계’는 비슷한 사회적 테두리에서 맺어지는 경향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얻을 확률이 낮은 반면, ‘약한 유대관계’는 범위가 넓어 오히려 새로운 정보나 기회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이후 많은 다른 조사와 연구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약한 유대관계’의 힘은 비단 취업시장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경영학자인 다니엘 레빈에 따르면 기업 CEO들에게 정확히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것은 그들 곁에 있는 ‘끈끈한 관계’가 아니라 ‘소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레빈 교수는 CEO들에게 한동안 연락을 취하지 않아 소원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 경영과 관련한 조언을 받아보도록 했다.

결과는 예외 없이 긍정적이었다. 대부분의 CEO들이 소원한 관계에서 얻은 조언이 현재의 관계에서 얻은 조언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새롭게 눈을 뜬 기분”이라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이런 관계가 주는 탄탄하고 강한 유대감은 삶이라는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뿌리가 된다. 하지만 그 나무에 많은 열매를 맺어주는 것은 사방으로 퍼져있는 잔가지들이다. 이것이 ‘약한 유대관계’와 ‘소원한 관계’가 발휘하는 힘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설립한 비영리기구인 ‘옵션B’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미국인들은 “그냥 생각나서 했다”는 간단한 안부인사 같은 사소한 행위가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먼저 전화기를 집어 들고 “그냥 생각나서 했다”며 그런 안부와 위로를 먼저 건네주는 주체가 되어준다면 어떨까. 오가며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팬데믹을 지나며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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