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0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가작 ‘멸치’

2020-12-18 (금) 강성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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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온몸은 물결모양으로 굳었다. 출렁이는 은회색빛이 등과 배를 지나는 이유 알 수 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표면이 그대로 내려앉아 바닷속에서도 알고 있었던 이유로 은빛으로 빛나기도 했겠지, 운명일 거다 받아들이는 생각과는 상관없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 수분을 잡아 보려고 힘쓰던 목덜미와 머리는 끝 끝내 갈라져 생명을 붙잡지 못했다. 단순히 몸통과 대가리 로만 구분되던 저 머리에서 입이 없다고 착각이 들만큼 보이지 않던 깨 씨알 보다 작은 공간이 뒤틀어져 있다. 수분 가득한 날들 투명하게 차오른 까만 눈두덩이는 째려보기라도 하듯 흰 눈동자 도드라져 누워있다. 다 말랐거니 보이는 겉모양 속에 끝까지 꾹 참으며 뱉지 않았을 마지막 바닷 속 한 개 숨이 들어있다

이렇게 끝이구나 생각도 하겠지, 놀라고 당황한 촘촘한 그물을 물어 뜯기도 하겠지만 결국 빠져 나갈 구멍을 미리 손질해둔 성실한 어부를 고마워하며 너에게 생의 첫날이 되었다. 너의 출생을 알리고 살아왔던 바다도 빛냈다. 스스로는 한 번도 옮기지 못했던 삶의 배경을 바꾸었다. 잡히는 것이 성공인 모순을 건져 올리는 마른 시간들, 뒷 산이 배경인 어느 산골 마당에 와불처럼 눞여지 기도 하고 액자 속 사막산처럼 바삭거리는 그림이 되기도 했다. 두줄 은빛 장식한 흰 접시에 누워 대단 한 손님을 만나기도 했다. 시장 골목을 누비며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시인의 눈속에 담겨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가는 동안 잡히지 못한 바닷속에 전해지는 역사가 되었다.

◆당선 소감: 강성예


농사를 지어본 적 없어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보려고 땅을 팠다. 생각보다 힘이 들고 할 일도 많아 파다, 쉬다 벌써 두 달째 세 평도 안 되는 밭을 고르고만 있다. 오늘 오후엔 씨를 뿌려야지 생각하고 아침에 빈 땅에 물을 뿌렸다. 그러고 들어와 보니 입상 축하 메일이 와 있었다. 확인하는 순간 기뻐서 아이들 앞에서 춤을 췄다. 씨는 오늘도 뿌리지 못했다. 천성이 느긋한 나에게 밭에 씨를 뿌려 보라고 문학 강좌를 소개해 주신 미주시학 미셜 정 시인님 감사드립니다. 밭에 시가 나와 있다고 처음으로 알아봐 주시고, 이렇게 생긴 게 시라고 구분해 주시며 무엇을 심어야 할지 가르쳐 주신 단국대학교 미주 문학아카데미 김수복 총장님, 박덕규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새로 오신 안도현 교수님께 물주는 법과 정성들여 기르는 법도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글을 처음 배우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께 배울 수 있게, 멀리까지 오셔서 값없이 가르쳐 주시는 단국대학교 미주 문학 아카데미 교수님들 덕분으로 행운의 기쁜 소식을 얻어 감사의 눈물 닦으며 춤추는 마음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선배 시인님들 고맙습니다. 옆에서 늘 챙겨 주시며 밭에 무엇이 났는지 관심있게 드려다 봐주시는 재미시협 안경라 회장님과 시인님들도 감사합니다.

내일은 만들어 놓은 텃밭에 꼭 씨 뿌려 시가 늘 자라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성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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