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 이민가족 이야기… 내년 아카데미상 기대작 ‘미나리(Minari)’

2020-12-11 (금)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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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삭 감독의 어릴 적 경험 영화화 잔잔한 감동… 아버지에 바치는 헌사 윤여정-앨란 김 콤비 능청연기 압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관객상

한국인 이민가족 이야기… 내년 아카데미상 기대작 ‘미나리(Minari)’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에게 채소밭 농토를 일구어 농부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980년대 아내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 주의 농촌으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의 드라마로 따스하고 정겹다.

한국계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의 어릴 때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올 선댄스 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아름다운 작은 가족 드라마다.

영화에서 정 감독의 외할머니 역을 한 윤여정이 독립영화를 상대로 상을 주는 고댐상 주연 후보로 올랐다. 한국인의 얘기이니 만큼 대사도 절반은 한국말이다. 작품, 감독, 각본 및 연기상 부문에서 내년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많다는 예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이민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얘기로 정 감독은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자기 가족의 얘기를 산책하듯이 서두르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상냥하고 또 조용하고 인간미가 가득하게 마치 수채화를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다. 감독이 자기와 자기 누나를 키우느라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애를 쓴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하겠다.

영화는 잔잔한 비감과 함께 야단스럽지 않은 유머를 고루 잘 배합해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데 이 유머는 순전히 윤여정의 상소리와 능청맞은 대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민 온 제이콥(스티븐 연)은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에 실패하면서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두 남매 앤(노엘 케이트 조)과 데이빗(앨란 S. 김)을 데리고 아칸소 주의 외딴 농촌으로 이주한다. 채소밭을 일궈 성공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온 것이다. 이동식 주택에 거처를 정한 제이콥은 낙천적인 사람으로 농토 위에 에덴동산을 마련하겠다는 뜻이지만 아내는 처음부터 농촌 이주에 반대, 부부싸움이 잦다. 반면 아이들은 어느 곳에나 잘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앤과 데이빗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새 생활에 잘 적응한다.

별로 안락하지 못한 제이콥 가정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 사람이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 능청맞은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 몰염치하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손자와 함께 화투를 치면서 너스레를 떠는 순자로 인해 다소 우중충했던 이 가정에 웃음꽃이 핀다. 영화의 본격적인 재미는 순자와 데이빗의 관계에서 맛 볼 수 있다.

데이빗과 모니카는 처음에 잠시 닭 공장에서 병아리 암수를 가르는 일을 한다. 이어 데이빗은 땅을 파 채소밭에 물을 대면서 채소밭 가꾸기에 전념하는데 그를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이 동네의 괴짜로 기독교 광신자와도 비슷한 폴(윌 패튼). 폴은 일요일이면 큰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걸으면서 예수의 고행을 재연한다. 제이콥은 채소재배에 성공하지만 이어 난관이 닥친다. 여기에 데이빗은 심장이 약해 부모의 걱정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순자가 개입된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만 데이빗은 결코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 일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상쾌한 미풍과도 같은 영화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연기들이 모두 뛰어난다. 특히 윤여정과 앨란 김(감탄할 정도로 연기를 잘 하는데 능청스럽기가 윤여정의 그 것을 뺨 칠 정도다)의 콤비가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데 이들 외에 스티븐 연(제작 겸)의 차분한 연기도 돋보인다. 브래드 핏의 제작사 Plan B 작품이다.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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