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름 위의 산성’이 있던‘메아리의 산’

2020-12-1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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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Echo Mountain ( 3,207’)

‘구름 위의 산성’이 있던‘메아리의 산’

Echo Mountain 정상에서의 서남쪽 전망.

‘구름 위의 산성’이 있던‘메아리의 산’

등산시작점인 Cobb Estate 입구의 모습.


‘구름 위의 산성’이 있던‘메아리의 산’

Echo Mountain 정상에서의 북쪽 전망.


‘구름 위의 산성’이 있던‘메아리의 산’

Echo Mountain 정상의 Echo Phone.


몇년전 어느 토요일의 일이다. 오후4시에 가게를 닫으면서 집에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서점에 들릴거라서 좀 늦겠다고 했더니, 마침 자기는 지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차를 타고 어디로 놀러가는 중이라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하겠단다.

주로 집안에 머무는 경향이 많은 아내에게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아내가 밖에 나가 바람도 쏘이며 재미있게 지낸다면 그 또한 내가 원하는 바람직한 일이라, 흔쾌히 수긍했다.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 들러서 사온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밤12시가 넘어 들어와서 나를 깨운 아내의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나도 잘아는 어떤 모임의 회원들과 달구경을 겸한 야간등산을 하고 왔다는 것이다. 등산이라니! 내가 그토록 등산을 하라고, 해야한다고, 하자고 노래를 불러대도 매번 외면을 해오던 사람이, 등산을 하고 왔다니! 놀랐지만 대단히 반가왔다.

거의 30여명이 함께 오른 산이 Echo Mountain였단다. 오르기가 힘들어 중간에 그만 두고 내려갈까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차를 같이 타고 왔기에 혼자 돌아갈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결국 2시간쯤 걸려 정상까지 갔는데, 주변의 산이나 달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며 사뭇 자랑스러운 듯한 어조였다. 그리피스팍의 Hollywood산을 제외하면, 산다운 산은 처음이란다.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요즘엔 가끔 주변의 남자들끼리, “나이를 들어가다가 언젠가는 남자가 먼저 죽어야지, 아내를 먼저 보내면 세상에 가장 불쌍한 남자가 된다”는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등산을 취미로 살아가는 나에 비해, 운동이라고는 아예 담을 쌓고 평생을 살고 있어 조금만 걸어도 몹시 힘들어 할 정도로 허약한 아내를 보며, 언젠가는 불쌍한 홀아비가 되거나, 아니면 언젠가는 휠체어를 타게될 법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게될지도 모를, 미래의 내 모습을 어둡게 그려보곤 했는데, 갑자기 한줄기 서광이 비치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고 시작이 반이니, 이것이 아내가 취미로 등산을 즐기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튼튼한 다리의 건강한 몸이 되어질 것이며, 결국 나도 ‘불쌍한 홀아비’는 결코 되지않을 것이라는 식의 거품일지 모르는 기대와 희망이 가슴을 채워 온다.

메아리의 산, Mt. Echo ! 이 Echo Mountain을 생각하면,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읽은 책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님이 강조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 오른다.

대개 이곳 남가주의 산에 얽힌 사연들은, 오래전의 인디안들의 전설이나 혹은 백인들의 서부개척기 또는 Gold Rush때에 있었던 어느 한 두사람에 관한 얘기에 그치는데, 이 Echo Mountain에는 그와는 크게 다른 대단히 화려하고도 역동적인 역사가 서려있다.

때를 130년 전으로 거슬러서, 1890년으로 가보자. 이곳 Pasadena 에 David Macpherson (1854~1927)이란 37세의 Cornell대 출신의 뛰어난 엔지니어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구름까지 오르는 철도(Railway to the Clouds )’라는 꿈을 꾸면서, 세계최초의 전기 산악관광기차(Electric Mountain Trolley)를 Mt. Wilson에 부설하려는 설계도를 만들어 그 사업의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이는 요즘으로 말하면 Disney Land나 Universal Studio같은, 아니면 그 이상의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겠다.

Henry Ford의 T-Model 자동차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이 1908년이었고, 미국에서 자동차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된 것은 1920년쯤이라고 한다. 1890년은 이 보다 30년이나 앞선 시기로, 극소수의 일부지역에 기차가 있었지만(1869년에 미대륙 횡단철도가 완성됨), 그래도 말이 끄는 마차가 최상의 교통수단이었던 시기였다. 이 때는 LA Downtown에서 Pasadena까지도 마차로 대략2시간이 걸렸고, 지금같이 San Gabriel 산맥을 통과하는 2번 도로(1956년에야 전면 개통됨)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결국 사람들이 소풍을 갈 수 있는 거리나 지역이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렇기에 가까우면서 접근하기 좋은 Pasadena인근의 Mt. Wilson이나 그 주변의 산들은, LA 전지역으로 부터 많은 선남선녀가 찾아드는 가장 붐비는 유원지 였던 것 같다. 이 당시 LA의 주변에는, 바다쪽으로는 Santa Monica, 산쪽으로는 Pasadena, Monrovia에 가장 먼저 도시가 성립되었다 한다.

이 당시에 Thaddeus Lowe(1832~1913)라는 백만장자 발명가 교수가 있었다. 비행기라는 것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었던 그 시기에, 사람이 타는 기구(풍선)를 군사목적으로 이용하는것을 제안하여, 미 공군의 전신을 창설한 바 있는 그가 Macpherson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함께 이를 건설하는 쪽으로 의기가 투합된다. 설치장소는 인허가 문제로 Mt. Wilson이 아닌 Mt. Echo로 변경됐다. Almarian Decker(1852~1893)라는 39세의 기차전문 엔지니어도 참여하여, 경사로에서도 안전할 Trolley도 고안해 낸다.


이 세사람의 주도하에 1893년까지, 1차 구간으로, Mt. Echo의 정상에서 산 아래의 Rubio Canyon까지를 직선으로 잇는 경철도가 부설된다. 더불어, Mt. Echo의 정상에는 객실 70개의 4층짜리 호화호텔과 작은 호텔, 또 관련 부속시설들이 속속 건립되어 진다. 마침내, Trolley를 포함한 모든 산위의 시설물들을 흰색으로 단장함으로써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게 한, ‘The White City’라고 불리게 되는 명소를 탄생시키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Mt. Echo에서 Mt. Oak(현재는 Mt. Lowe로 명칭이 바뀜)까지의 2차구간은 훨씬 길고 험준한 지형이어서 예상을 초과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결국 이 사업의 소유권이, 1899년에 오늘날의 ‘City of Torrance’라는 이름의 주인공인Jared Torrance 라는 부동산부호에게 넘어가고 더 나중에는 오늘날San Marino에 있는 Huntington Library의 주인이었던 Henry Edward Huntington의 소유가 되기도 한다.

1900년에는 화재로 4층호텔이 전소되었으나 복구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화재와 홍수가 세차례 더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Trolley는 운행되었다고 하는데, 1922년에는 Henry Ford도 이곳을 다녀갔다. 하지만 1938년에 남가주에 있었던, 3일 동안의 집중호우에 의한 기록적인 대홍수는 이 시설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감으로써, 45년에 걸쳐 300만명의 관광객을 이곳으로 불러왔다는 역사적인 화려한 기록을 남기고 이 산악관광철도는 역사의 뒤안으로 영영 사라지게 된다.

제행무상! 모든 세상사나 인간사가 다 그렇듯 모든 것은 금새 지나가게 되고, 지나가고 나면 모든게 허허로운 한바탕의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구름위의 산성 - ‘The White City’와 이를 축조해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화려한 꿈과 뜨거운 정열은 지금 다 어디쯤에 있는가? 그 멋진 하늘의 하얀 성에 올라보려고 북적이며 밀려 들었을 그 많던 유람객들과 그들이 발한 그 숱한 기대와 탄성과 환호는 다 어디로 갔는가?

화려했던 역사의 현장을 한발 한발 걸어 올라가며, 그러한 꿈과 정열, 탄성과 환호의 편린이나마 한번 찾아 보기로 하자.

★가는 길
210 Freeway의 Pasadena 인근의 Lake Ave에서 내려 북쪽(산쪽)으로 3.5마일 올라가면 Lake Ave가 끝난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Loma Alta Dr이고, 오른쪽은 Cobb Estate라는 싸인이 붙어있는 철재 울타리로 막혀 있다. 차를 부근 도로변의 적당한 곳을 찾아 주차한다. 주차증(Adventure Pass)은 필요없다. 철재울타리 사이로 나있는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등산코스
Mt. Echo는, 등산로 입구에서 보게되는Sam Merrill Trail을 따라, 편도 2.5마일, 순등반고도 1400’로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도시의 야경도 잘 볼 수 있어, 달빛등산(Moonlight Hiking )의 명소로 추천되고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Sam Merrill Trail은 Mt. Echo의 정상을 살짝 비켜가며 ‘Inspiration Point’라는 전망대까지 약 5.5마일 에 걸쳐 이어지는데, 우리는 초반의 2.5마일구간만을 따라가면 된다.

등산로 초입에서 길이 왼쪽으로 꺾이며, 얕은 계곡인 Las Flores Canyon의 왼쪽 언덕을 따라가게 된다. 2~3분을 걸어가면 물이 없는 개천을 지나 약간 오른쪽으로 나타나는 산기슭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부터는 계속 지그재그로 산비탈을 올라간다.

길은 잘 닦여져 있고 정갈한 흙길이라 걷기에 아주 편안하다. 올라가면서 뒷쪽을 돌아보면 바로 밑의 시가지모습이 차츰 더 아래로 멀어져 가는것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 1마일 왔음을 알리는 표지말뚝이 길 오른쪽에 나온다.

길 주변으로는 Ceanothus, Toyon, Sugar Bush, Laurel Sumac 등의 수목이 무성하다. 봄이 되면 Black Sage, Monkey Flower, Indian Pink, Black Mustard, Spanish Broom등의 식물들이 아름다운 꽃들을 여기저기 피워낸다.

더 가다보면 2마일 표지말뚝이 나온다. 이제 반마일 남았다. 이마에 땀이 나고 목이 마를 수도 있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 계곡과 산의 풍경을 즐기고, 심호흡도 몇번하여 산의 풋풋한 기운을 몸속 깊이 채워 넣자.

마침내 오름길이 다 끝나고, 좌우로 뻗어 있는 넓은 길에 올라선다. 좌측으로 가면, 굴곡이 많은 2차 산악철도구간의 옛자취를 보면서 또 Las Flores Canyon, Millard Canyon의 푸르른 경치를 발아래로 보면서, 3마일 거리의 Inspiration Point에 이르게 되나, 우리는 우측으로 간다.

불과 100m쯤의 평평한 길을 가면, 왼쪽 길변에 놓여져있는 대단히 큰 철제기어(Bull Wheel)를 비롯한, ‘White City’의 옛 자취와 함께 그를 설명해주는 안내팻말들이 여기저기 서있는 Mt. Echo의 정상부근이 된다.

넓은 길이 끝나는 곳엔 3줄짜리 철로가 10미터쯤의 길이만큼 남겨져 있다. 원래는 여기서 직선방향으로 0.5마일을 급경사로 내려가며, 산아래Rubio Canyon까지 부설되어 있었단다. 오르고 내리는 복선의 Trolley의 운행을 위해서는 통상 4줄의 선로가 필요한 것이 상식인데, 급경사진 계곡에서 넓게 지반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않고 또 공사비도 줄이려는 목적에서, Lowe교수의 아이디어로, 3줄의 선로를 부설하되, 중간지점의 상하행 교차구역만 4줄의 선로를 부설하는 방식을 적용했다고 한다.

왼편에 위로 오르는 계단이 아직 남아 있다. 1938년의 대홍수로 Trolley 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45년간 3백만명의 선남선녀가 오르고 내렸다는 바로 그 계단이다. 계단을 오르면 꽤넓은 공터의 산 정상이다. 주 건물인 호화호텔 ‘Echo Mountain House’가 있던 곳이다.

큰 건물의 흔적이 여기저기 완연하다. 그 때는 자동차가 없던 때라 공기가 아주 청정했을 것이다. 이곳에 있던 4층의 호텔건물 전망대에 서면, 뒤로는 높은 산들이 병풍되어 둘러 있고, 앞으로는 푸른 산록과 넓은 벌판에, 멀리 태평양의 빛나는 바다까지 두루 볼 수 있는 ‘배산임수 전저후고’였을 테니, 과연 막대한 돈을 들여 호텔을 지을만한 터 였겠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리 조선풍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자리는 ‘장풍득수’ 즉 ‘풍수’라는 말이 나오게 된 핵심요소의 하나인 ‘장풍’이라는 면에서 결정적인 흠결이 있었나 보다. 즉 바람을 잘 타지 않는 안온한 곳이 사람이 잘 살 수있는 길지라는 관점에서는, 이곳이 센바람을 여과없이 그대로 맞기 쉬운 산의 정상이기에 ‘장풍’지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국으로 볼 수 있겠다. 어설픈 생각이긴 하지만 불과 7년을 못 넘기고 전소해버린 이 산상호텔의 운명을 이런 차원으로 이해해 본다.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가면 사람들이 뒷쪽의 산들과 계곡(Castle Canyon)을 향해 큰 소리로 “야호~!”라고 외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Echo)를 즐길 수 있도록, 나팔모양의 메가폰인 ‘Echophone’이 설치되어 있다. 메아리가 가장 여러번 잘 반향되어오는 Sweetspot이 바로 이 자리라는데, 그 옛날에 Boy Scouts대원들의 현장실험을 통해 이 지점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산 이름이 ‘Echo’인 배경이다.

세월따라 모든 것들이 사라졌어도, 저 만큼 뒤로 쭈욱 늘어서 있는 산줄기들 어딘가에 아직 생생히 살아있을 메아리들을 일깨워 그 옛날의 화려했던 사연들을 들어 볼 수도 있을려나? 필자의 체험으로는, 특히 석양무렵에 메아리가 잘 응답해 온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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