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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셀프 사면’

2020-12-10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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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서 워싱턴 정가에선 ‘대통령의 셀프 사면’ 설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쟁점은 두 가지다 : 할 수 있나, 없나? 할까, 안할까?

현대 미 대통령들의 임기 말 의례의 하나로 자리 잡은 대통령 사면권의 역사는 1787년 헌법 회의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이 반란의 시대에 사면이 “나라의 평정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밀턴의 제안대로 헌법에 포함된 대통령의 사면권은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위스키 과세에 저항해 폭동을 일으킨 주모자 2명을 사면하면서 처음 행사되었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백인 농민을 공격한 원주민 262명 사면과 앤드류 존슨의 남부군 사면, 1977년 지미 카터의 베트남전 징병거부 도피자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면 등 대규모 사면도 적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의 선제적 닉슨 사면으로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초래했고 결국 2년 후 포드의 낙선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외에도 빌 클린턴의 마약범죄 연루된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 사면, 조지 W. 부시의 사법방해 유죄판결 받은 스쿠터 리비 전 보좌관 사면 등 권한 남용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은 적극적 사면권 행사로 수많은 전례를 남겼다.

그러나 역대 어느 대통령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 가지 사면이 있다. 바로 셀프 사면이다.

첫 번째 쟁점인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할 수 있는가”는 전례가 없어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맞서면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미결 사안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에 대한 범죄의 형 집행을 유예하거나 사면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정의한 헌법 2조엔 셀프 사면을 명백하게 금지하는 구절이 없다. “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셀프 사면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불법이라는 반대 주장 또한 강경하다.

최종 판가름은 연방대법원의 몫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건 트럼프가 셀프 사면을 단행하고, 차기 법무부가 그의 기소를 결정해야 시작될 법정 투쟁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나올 수 있다.

셀프 사면 가능성에 대한 최종 해답은 두 번째 쟁점인 “트럼프는 자신을 사면할까 안할까”의 결론에 따라 나올 것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지금쯤 트럼프 진영에선 셀프 사면의 장단점을 세세히 비교하는 손익계산이 한창일 것이다. ‘위험한 선례’나 ‘대통령의 품격’ 같은 잣대가 거론 될 리 없을 정치적 계산의 주요 기준은 물론 그의 미래에 끼칠 영향이다.

시사주간지 ‘더 위크’는 트럼프 셀프 사면의 대표적 단점으로 자신의 유죄를 입증할 필요가 없는 수정헌법 5조의 권리 포기를 꼽는다. 사면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셈이 되는데 연방 기소는 피할 수 있다 해도 앞으로 연방의회 청문회에 소환된다면 출두해 증언할 법적 의무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산이 끝나면 두 번째 쟁점의 답이 나올 것이다. 트럼프 측근들은 “마녀사냥이 계속될 것”이라며 퇴임 후 정치적 기소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트럼프에게 셀프 사면을 촉구하고 있고, 워싱턴의 옵서버들은 “트럼프가 셀프 사면 없이 퇴임한다면 오히려 더 놀랄 것”이라고 말한다.

닉슨처럼 임기 만료 전 사임한 후 마이크 펜스 ‘대통령 대행’의 사면을 받는 방법도 있다. 정치적 야망이 큰 펜스가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려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전례가 있으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마지막 공적 업무는 셀프 사면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크리스 트루액스 변호사는 대통령 사면이 주와 지방 검찰의 기소에서까지 보호해 주지는 않지만 트럼프는 연방 선거법 위반, 금융비리와 탈세, 사법방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의 연방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만약 30년 이상 연방교도소에 갇힐 위험이 있다면 당신이라도 셀프 사면을 하게 될 것”이라고 USA투데이 기고를 통해 지적했다.

셀프 사면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겐 ‘트럼프가 의도하지 않은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LA타임스와 AP통신, 폭스뉴스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나오고 있다. 좌파의 ‘트럼프 기소’ 압력과 우파의 ‘정치적 보복’ 비난 사이에서 취임초기의 ‘골든타임’이 자칫 허비될 수 있는 바이든의 딜레마를 트럼프의 셀프 사면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미국민의 절대다수는 대통령의 셀프 사면을 반대한다. 2018년 러시아 스캔들 와중에서 실시한 AP조사에 의하면 반대가 85%를 기록했다. 공화당 응답자의 ‘반대’도 75%에 달했다.

상당수 법학자들은 헌법에 셀프 사면 금지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헌법 제정자들이 “그런 대통령이 나올 것으론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에게 셀프 사면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보수 법학자 조나단 털리 조지 워싱턴 법대 교수도 “합헌이지만 옳은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하지 말라는 완곡한 권유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어느 것도 트럼프의 결정엔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사상 첫 셀프 사면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감행할 것인지, 닉슨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트럼프 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백악관의 밤’도 이제 41일 남았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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