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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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의 마지막

2020-12-09 (수) 김명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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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던 시계가
죽음처럼 멈추어 선 것은 지난 밤
스르르 잠이 오는 의식 사이로 소리의
박자가 끊겼다
활기찬 생명을 흠모하며 따라가던
시계바늘이
동면하듯 깊은 동굴로 들어갔으므로
시계는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했고,
시계 바늘은 운명처럼
한 자리에 멈추어서 고요를 깨우던
잡음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매일 지구를 한 바퀴씩 돌게 했던
질서의 꿈틀거림도
멈춘 시계 위에 꽂혀 버린 건
당연하였고
똑딱 거리는 숫자만큼 둥근 원 밖으로
탈출하려던
불면의 소리들도 불만 없이 멈추었다
그곳에 길이 있어 둥글게 따라 돌던
인과응보가
진리라 외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믿고 품어왔던 법칙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스스로의 의무를
가책없이 내려놓고
편안해져 버린 것이다
오랜 노동에 지쳐 버린 육신의
욕망이 허물을 벗고
피난처 같은 휴식으로 들어간 것은
비로소
우주의 시간에서 조차 놓여 난 시계의
해탈이었다
시체가 된 시계를 검은 상자에 넣으면서
죽음과 함께
피안(彼岸)의 바다에 이른 생(生)의
마지막을 보았다.
(제15회 동서 문학상 공모전 수상작)

<김명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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