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쓴 채 지인들과 가끔씩 나누는 대화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주제는 “언제나 팬데믹이 끝나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다. 각자가 접하는 정보에 자신의 희망과 판단을 섞어 나름대로 전망들을 해 볼 뿐이다.
하지만 새해를 앞두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염원하고 있는 소망은 팬데믹의 조속한 종식일 것이다. 다행히 일부 백신이 개발되면서 팬데믹이 잡힐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확히 언제쯤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팬데믹의 속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얘기다.
올 초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2~3달 정도면 상황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많은 정치인들 역시 그랬다. 아니, 곧 코로나19가 끝날 것이라고 장담하며 무책임하게 대중을 호도한 정치인들이야말로 팬데믹의 주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낙관하고 방심하는 사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들불처럼 확산됐다. 지난 10개월 동안의 참혹한 현실과 복마전 같은 혼란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팬데믹이라는 괴물을 상대하는 데는 그 어떤 한 순간의 방심이나 낙관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당장 혹독한 금년 겨울추위 속에 바이러스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 확실하다. 백신을 통해 집단적인 면역이 형성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국가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팬데믹이 진정되기 전까지 막대한 희생이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연방질병통제국은 오는 2월까지 40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결국 백신접종이 팬데믹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백신 물량 확보와 효율적인 접종 시스템의 확립도 관건이지만 백신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접종을 거부하면 집단면역 형성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 소프트 경영에서 손을 뗀 후 글로벌 보건사업을 벌이면서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생산을 적극 지원한 빌 게이츠는 “백신이 효험이 있고 대규모로 빠르게 준비돼 적절히 분배될 경우 선진국들은 2021년 말 쯤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가 전제로 내건 조건들에 비춰볼 때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는 어쩌면 2021년 말보다 훨씬 더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2~3달 안에서 2020년 말로, 그리도 또 다시 2021년 어느 때로 과거로의 복귀 희망시점은 계속 늦춰져왔다. 지나친 낙관과 긍정에는 그만큼 큰 배신의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절망과 좌절은 증폭되고 깊어진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현실을 보다 냉정히 바라보면서 장기전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이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상정한 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으라. 그러고 난 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해보기 바란다. 그러면 실제로 그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의 의식은 상대적 기준을 축으로 작동한다. 걱정했던 것보다 상황이 괜찮으면 안도하면서 조금 느긋해진다, 그러면서 잘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 데일 카네기가 들려주는 조언이다. 자기계발서를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 불확실한 상황 대처와 관련해 그가 들려주는 방법은 살아오는 동안 실질적인 도움이 돼 주었다.
일부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완전 퇴치에 수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돈과 시간, 그리고 정치적 의지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지난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조속한 팬데믹의 종식은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너무 낙관적으로 기대하기 보다는 팬데믹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기본 값으로 설정해 놓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과 루틴, 그리고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장기전에 덜 지칠 수 있는 지혜가 될 수 있다.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한 식당 안에 빼곡히 자리 잡은 채 왁자지껄 떠들며 어울리던 시절의 일상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되돌아오기 힘든 추억속의 광경으로만 남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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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