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변화무쌍한 암석미…현세의 윤회 체험처럼

2020-12-04 (금) 정진옥
크게 작게

▶ 산행가이드 Ken Point ( 6,453’)

변화무쌍한 암석미…현세의 윤회 체험처럼

멀찌감치에서 본 Ken Point.

변화무쌍한 암석미…현세의 윤회 체험처럼

등산로 어느 구간의 풍경.


변화무쌍한 암석미…현세의 윤회 체험처럼

Ken Point 정상의 모습.


윤회(Samsara)에 대한 상식수준의 이해로는 “무릇 중생의 영혼은 해탈을 얻을 때까지는 무시무종으로 끊임없는 생과 사의 순환을 계속한다”는 개념일 것이다. 이 때 장차 다시 태어나는 몸이나 세계는 자신이 이생에서 지은 행위나 업(Karma)에 따라 결정되어지므로, 해탈을 목표로 부단히 선업을 쌓으며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겠다.

윤회생사의 진위여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없는 내세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있는 지금의 이 현세에서의 윤회라고 한다면, 이는 매우 그럴싸 하다. 즉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낳게 된다는 그런 현세에서의 윤회라면 한결 수긍이 간다.

그런데 이생에서의 삶으로 보면, 때때로 환경과 처지가 달라진 상태를 경험하는 ‘윤회하는 삶’ 자체가, 고요하고 변화없는 ‘해탈의 적정’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이고 매력적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가끔씩 가정에서의 편안한 일상을 벗어나 며칠씩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일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이런 저런 산들을 찾아 힘든 산행을 하는 것도, 이러한 새로운 환경과 처지를 경험하고픈 욕구의 발로일 듯 하니, 이를 일러 ‘이생에서의 자발적 윤회’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뭏든 이런 관점에서는 이민생활이나 병영생활 등이 훌륭한 윤회의 예가 되겠는데, 낯선 곳으로 몇 주간씩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백패킹 산행을 나서는 것도 이 윤회의 범주로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미국은 땅덩이가 광대하다. 그러므로 산행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또 하나의 삶을 경험하는 일이 여러가지로 가능하다. 우선은 2~3주가 소요되는 210마일의 JMT(John Muir Trail) 산행을 생각할 수 있겠다. 오로지 원시자연의 고산지대를 무장을 해제한 원시인간의 맨 몸으로 돌아가, 추가적인 문명의 혜택이 거의 없이 3주일쯤 산행을 하는 일이, 어쩌면 인간이 되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마늘과 쑥만을 먹으며 3칠일을 견딘 끝에 곰에서 여인으로 환골탈태하는 단군신화나, 아니면 수녀나 스님의 ‘출가후 입산수도’를, 또 작은 윤회의 삶을 감히 연상해 본다면 과대망상이 되나?

산행을 통해 새로운 윤회의 삶을 경험하는 또 다른 본격적인 방법으로는 PCT(Pacific Crest National Scenic Trail)의 종주를 들 수 있겠다. 필자는 아직 이 PCT를 완주한 일은 없으니 JMT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차제에 등산인들이 일컫는, 소위 “The Triple Crown of Hiking”에 대해 살펴본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산행으로는 3개의 트레일을 든다.

첫째는 PCT이다. 서부의 California, Oregon, Washington을 지나는 2654마일의 등산길이다. 둘째는 AT(Appalachian Trail)이다. 동부의 Georgia에서 Maine에 걸치는 14개 주를 경유하는 2184마일에 이르는 길이다. 셋째는 CDT(Continental Divide Trail)이다. Montana, Idaho, Wyoming, Colorado, New Mexico로 이어지는 Rocky Mountain줄기를 걷는 3100마일의 여정이다.

이들 3개의 트레일을 합하면 모두 7938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가 190마일(약 100만 피트)을 넘으며, 22개의 주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하루에 평균 15마일을 걷는다면 단순계산으로는 530일이 걸리고, 하루에 21.75마일씩 걷는다면 365일이 걸리는 거리이다. 지구 둘레의 약 3분의 1의 거리이다.

이 3개의 트레일을 모두 종주해낸 사람을 ‘Triple Crowner’라고 하는데, 2019년 11월 기준으로는 440명의 ‘Triple Crowner’가 배출되었다. 최초의 Triple Crowner는 Eric Ryback으로, 1969년(16세)에 AT, 1970년(17세)에 PCT, 1972년(19세)에 CDT를 완주했다. 가장 어린 사람으로 기록된 Triple Crowner는 여성인 Reed Gjonnes이다. 11세인 2011년에 PCT, 12세인 2012년에 AT, 13세인 2013년에 CDT를 종주했는데, 아버지 Eric Gjonnes와의 동행이었다.

어쨌거나 이들 3관왕은 물론이지만, 이 3개의 트레일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종주한 Hiker들은 이생에서의 윤회를 체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본다. Triple Crowner명단을 살펴보니, 일본인으로 보이는 여성(Masafuni “Masa” Saito, 2014년)이 있고, 중국인으로 보이는 이름(Daniel ‘Cloud Walker” Liu, 2015년)이 있다.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이름은 발견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이들 장거리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완주에 성공하는 비율은 20%에 미달한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배낭의 무게가 15~25 파운드에 그쳤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 한국인 Triple Crowner의 조속한 탄생을 발원하면서, PCT의 한 구간을 걷게 되는 ‘Ken Point’ 산행을 안내한다. PCT의 남쪽 출발점인 Campo로 부터 153.7마일 지점에서 160.3마일 지점까지를 왕복하게 되니, 13.2마일의 PCT를 걷게 된다.

산행의 전체거리는 16.2마일이고 순등반고도는 2350’정도가 된다. 왕복산행에 보통 10시간쯤 걸린다. 등산로 주변으로 길게 펼쳐지는 우람하면서 변화무쌍한 암석미가 대단하고, 온 세상을 다 덮다시피한 Red Shank Tree가 계절에 따라 푸르게, 하얗게, 또 붉게 변하면서 포근하고 평화로운 그림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가는 길

Freeway 60번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Freeway 215번의 South로 갈아탄다. South로 가다가 Ramona Expressway가 나오면 여기서 좌회전한다. 이를 타고 동쪽으로 또 남동쪽으로 가다보면, SR 74(Pines to Palms Hwy)로 연결된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SR74를 타고 동쪽으로 가면 Highway 243번과 만나는 곳의 Mountain Center에 닿는다.

여기서 계속 SR74를 동남쪽으로 12.5마일을 더 가면, 오른쪽에 Paradise Valley Caf가 있고 SR371이 갈라지는 3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계속 SR74를 타고 동쪽으로 1마일을 더 가면, 왼쪽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가 있는데, 여기서 좌회전하여 100m쯤을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PCT선상에 있는 주차장(4920’)으로 이곳에 차를 세운다. LA한인타운에서 120마일 쯤인 지점이다.

등산코스

산행코스는 비교적 단순하다. PCT를 따라 북쪽으로 6.6마일을 간 다음에 동쪽으로 1.5마일을 더 들어가면 Ken Point의 정상이 된다. 북쪽으로 등산로가 있고 안내판이 있다. 조금 걸으면 ‘Andy Elam’을 기리는 내용의 기념비가 있다. 1989년 6월에 이곳에서 운명했다는 사실 외에는 ‘Why, How’에 대한 언급이 없어 궁금증을 풀 길이 없다. 아마도 좀 늦게 Campo를 출발했던 PCT Hiker가 더위에 시달린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며, 고인이 좋은 윤회의 삶을 누리기를 발원한다.

보드라운 잎을 지닌 Red Shank(=Ribbon Tree)가 지면을 가득 채운 사이로 아주 완만하게 나있는 오름길을 가기 10여분이면 북쪽의 전망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약간의 내리막 지형에 이르른다. 날카롭지 않게 몽실몽실 솟아있는 Desert Divide의 남동쪽 줄기가 정면으로 있고, 오른쪽으로는 Toro Peak, Santa Rosa Mountain의 산괴가 보인다. 경사가 거의 없고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기에 편안하다.

나아갈수록 지층의 바위들이 지면에 노출된 암반지대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한 동안은 등산로 주변의 나지막한 봉우리들이나 평지의 거의 전부가 바위이고 암반인데, 다양하고 기묘하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자꾸 머리가 뒤로 돌아간다. 산이나 지면에 바위들이 불쑥 솟아오른 것이라기 보다는, 암봉이나 암반의 표피에 깔린 얕은 토양에 억센 관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바위와 Red Shank가 잘 어우러진 경치를 즐기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철재 게이트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아마도 사유지에 속하는지 PCT Hiker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 게이트이다. 벌써 6.6마일의 PCT구간을 다 지나온 것으로 고도 5970’인 곳이다.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있고 왼쪽으로는 Butterfly Peak(6240’)이 가깝다. PCT는 계속 직진이나 우리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Live Oak Spring Trail을 따라 동쪽을 향한다.

PCT에 비해 등산로가 비좁고 양 옆의 나무들이 웃자라 있는 구간들이 있다. 오른쪽으로 있는 산봉우리의 북쪽 기슭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왼쪽은 시야가 툭 트였다. 한없이 드넓은 Coachella Valley와 그 사막에 한 점 섬으로 있는 Palm Springs, Palm Desert 등의 오아시스 마을들을 볼 수 있다.

7.3마일 지점에 이르면 우측의 산줄기가 낮게 잦아지면서 왼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줄기가 돋아나는 Saddle이 된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간 7.6마일 지점에서 왼쪽의 낮은 산줄기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지점(6120’)을 알려주는 Ducks들이 있다. 이제 Ken Point(6453’)는 0.4마일의 지근으로 바로 앞에 있다. 정상까지 333’를 오르는 것이니 어렵지 않다.

밑에서 보던 정상점에 올라서면 그 뒤로 또 하나의 비슷한 고도의 돌출 Point가 있다. 등록부가 비치되어있는 최정상점으로 250m가 될지 말지한 거리이고 평지이다. 이 정상부위에 산재한 나직한 바위들의 형상이 특이하다. 주상절리라고 할 수 있을지, 한결같이 수직으로 갈라져 있다.

Ken Point라는 산의 이름은 이곳 정상에 있는 Benchmark에 ‘KEN’이라는 새김이 있어, Sierra Club에서 편의상 부여한 것이다. 예전에 이 인근에 악명을 떨쳤던 Kenworthy Mine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정한단다.

정상에서는 사방에 걸쳐 시야가 트인다. 북쪽 맨 뒤에 Mt. San Jacinto(10804’)가 보이고 그 앞으로 뻗어내린 Desert Divide의 줄기가 근 20마일을 달려 맨 끝 여기 내 발밑에 엎드린 정황이 마냥 가상하다. 또 다른 쪽에서는 Asbestos(5265’), Sheep(5241’), Martinez(6560’), Toro(8316’), Santa Rosa(8070’), Cahuilla(5635’), Thomas(6825’) 등의 산들이, 내가 자기들을 흠모하는 것을 익히 아는 듯, 친근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