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한 것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집단은 극우 음모론 추종단체인 ‘큐어넌’(QAnon)이다. 2017년 극우 온라인 게시판에서 태동한 큐어넌은 민주당과 연결된 비밀 집단 ‘딥스테이트’가 정부를 통제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구하기 위해 이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음모론을 신봉한다. 또 딥스테이트를 악마숭배자와 소아성애자로 묘사하고 있다.
큐어넌 추종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돼 딥스테이트를 확 쓸어버릴 것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어왔다. 이번 대선이 민주당과 딥스테이트를 심판하는 날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글들이 음모론 커뮤니티를 도배했다. 하지만 현실은 매몰차게 이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여전히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외치는 추종자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큐어넌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온라인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그동안 자신들이 속아온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내비치는 신봉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음로론 신봉자 두 명이 연방하원에 진출하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음에 큐어넌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크게 가라 앉아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간직해 온 확신과 믿음이 빗나갔으니 큐어넌은 이제 시들해지거나 사라지게 되는 걸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 대답이 될 것이다. 대선패배 충격으로 한동안 흔들릴지는 몰라도 큐어넌은 머지않아 다시 자신들의 스토리를 만들고 재정비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결과적인 현상에 따라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 결과를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오히려 기존의 믿음을 한층 더 강화한다. 이런 광경은 광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집단에서 흔히 목격된다.
수십 년 전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종말론을 신봉하는 종교단체들을 연구했다. 페스팅거는 이 단체들이 예언했던 종말론이 예외 없이 빗나갔음에도 이들은 대부분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믿음의 잘못됐다고 깨달아야 함에도 신자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극성이 되었다.
이해하기 힘든 이런 현상을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사실이 달라 마음속에서 부조화가 일어날 경우 교묘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 이런 부조화를 해소해 나간다는 것이다. 종말론 단체들의 경우 신자들은 종말이 허황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믿음이 신을 감동시켜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시켰다.
트럼프를 광신적으로 지지하는 큐어넌 신봉자들이 앞으로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치게 될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이다. 어떤 객관적 사실 앞에서도 광신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새로운 스토리와 해석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려 든다.
트럼프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음담패설 테이프가 공개되자 열광지지자들은 “그가 건강한 이성애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리한 합리화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 드는 성향은 극우뿐 아니라 극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상해 보건대 큐어넌은 인지부조화 극복을 위해 “보라, 우리가 우려해온 대로 딥스테이트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나”라는 스토리를 들고 나오게 될 것이다. 바이든 취임 때까지는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서서히 전열을 재정비하고 추종자들을 다시 결집해 ‘악의 세력과의 성스러운 전쟁’에 나설 것이다. 이들이 퍼뜨리는 황당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들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면서 바이든 행정부 4년 동안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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