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 되기

2020-11-16 (월) 12:00:00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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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식습관이 바뀌었다. 아이를 잘 먹이기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마신다. 평소에 물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모유 수유를 위해 틈만 나면 물을 마신다. 미역국은 지겹게 먹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배를 보면 다이어트가 절실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아이의 피와 살이 되니 의무적으로라도 열심히 먹는다.

귀가 밝아졌다. 아이를 낳고 생긴 새로운 능력이다. 조그마한 몸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내는데도 엄마가 된 내 귀에는 큰 소리로 들리나 보다. 남들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아이의 작은 칭얼거림도 저 멀리에 있어도 다 들린다. 내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 향해 있기 때문이리라.

모든 시간이 아이 위주로 흐른다. 아이가 잘 때를 틈타 먹고 씻고 간단한 볼일을 본다. 밤잠이 많은 내가 새벽에도 몇 번씩 깨는 아기를 위해 거뜬히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 주고 수유를 한다. 수면의 양과 질이 현저히 낮아졌지만 이 모두 각오한 일이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해내고 있다.


입는 것도 전적으로 아이를 생각해서 입는다. 패션은 고려하지 않고 수유하기 편한 단추나 지퍼로 여닫는 옷만 입는다. 출산만 하면 입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예쁘지만 불편한 옷들은 죄다 옷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와의 밀접 접촉이 가장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부드러운 면소재 옷을 찾게 된다. 요즘은 가뜩이나 화장을 하지도 못하지만 그나마 쓰는 기초 화장품도 모두 순한 것으로 바꿨다.

내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른 아이들도 다 예뻐 보이고 애틋한 마음이 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알아간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인지 새삼 깨닫는다.

처음 부모가 되는 것이라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부모의 자리를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 앞에선 이전보다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아이 눈에 담길 내 모습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때로는 크게 바뀌어 버린 내 삶이 그리고 이 퇴근 없는 일상이 벅차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까지 겹쳐 더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었다. 하지만 내 이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자고 다짐하곤 한다. 안 그래도 우울한 뉴스가 가득한 세상에 아이의 우주인 엄마마저 아이에게 나쁜 기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고자 노력한다.

앞으로 아이가 마주할 이 자연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아직 바깥은 소란하고 마스크 없이는 나갈 수가 없다. 숨 쉬는 것도 겨우 배운 아이에게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살아야 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어른들이 어지럽혀 놓은 세상을 바로 잡고 이 작은 아기에게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볼 작정이다. 이런 마음이 들다니 아가야 너만 크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로 인해 크고 있구나. 나만 위해 살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애쓰고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니 스스로가 무척이나 대견해지는 새벽녘이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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