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날카로운 암봉 정상에 올라 느끼는 ‘희열’

2020-11-06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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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2) Desert Divide 6 Peaks

날카로운 암봉 정상에 올라 느끼는 ‘희열’

PCT를 가로막은 거대한 낙석.

날카로운 암봉 정상에 올라 느끼는 ‘희열’

Antsell Rock 정상 아래의 마지막 등반구간.


날카로운 암봉 정상에 올라 느끼는 ‘희열’

Antsell Rock을 오르는 West Ridge Route.


날카로운 암봉 정상에 올라 느끼는 ‘희열’

Antsell Rock 최정상에 오른 대원들.


Antsell Rock이 많이 가까워지면서 PCT와 오른쪽 암릉선의 고점의 고도차가 50’내외로 근접되고 PCT가 왼쪽으로 굽으며 내리막이 되는 지점이 나온다(13:00; 9.65 Miles; 7200’). Sierra Club HPS의 Route 2에서 기술한 Point이다. Ducks나 Use Trail은 없으나, 이 지점에서 모두 헬맷을 착용하고, PCT를 떠나 암릉선의 고점으로 올라간다. 2012년의 종주시엔 이 Antsell Rock의 험악한 기세에 주눅들어 감히 오를 생각을 못한 채, PCT를 따라 이 구역을 그냥 통과했었다.

내가 이 Antsell Rock의 정상에 실제로 오른 것은 2019년 8월21일이었다. 그 때는 Antsell Rock 주봉과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위치의 PCT선상(6875’)에서 1/3마일이라는 짧은 거리로 800’의 고도를 오르는 가파른 비탈을 통해서 정상에 올랐었다. Sierra Club에서의 Route 1에 해당한다. Class 3인 Narrow Notch까진 어렵거나 위험하진 않았고, 단지 밑에 있는 대원이 낙석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했었다.

등산코스


오늘은 주봉에서 서쪽으로 다소 떨어진 PCT지점에서 주릉선 고점의 들쑥날쑥하고 날카로운 바위들을 타고 넘는 등반을 한다. Sierra Club의 Route 2이다. 낙석의 염려는 전혀 없는 대신 추락사에 대한 아찔한 두려움이 밀려든다. 암릉선의 약간 서쪽 아래로 기슭을 타고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나, 제이슨을 필두로 일행이 먼저 앞서 나아가니,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Antsell 이란 이 암봉의 이름은 1898년에 Edmund Perkins라는 지형학자가 붙였다는데, 오늘 날의 Mountain Center의 동쪽에 있던 ‘Keen Camp’에서 우연히 이 Desert Divide 산줄기를 화폭에 담고 있던 예술인 ‘Antsell’을 조우케 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림이 너무 감동적이었거나, 이 산줄기에 대한 Antsell의 애정이나 인품에서 큰 감명을 받았었던가 보다. 아니면 그가 대단히 매력적인 여성화가였는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 봄직하다. 유감스럽게도 ‘Antsell’에 대한 단서는 더는 없다고 한다.

암릉의 고점을 따라 이어져 있는 바위들의 크기나 형세가 다양하여 그 위를 조심 조심 선별하며 밟아 나간다. 혼자라면 못할 듯 하나 멤버들이 함께하니 가능한 것이다. 팀웍이나 시너지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겠다. 눈 앞에 나타나는 바위들을 그 특성에 따라 오르고 내리며 또 좌로 우로 옮겨가며 나아가노라니, 가끔은 허공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안전하게 발을 떼어 놓을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바위들의 좌우가 대개는 상당한 높이의 절벽이나 단애의 형국이라 오금이 저리고 불안감이 엄습한다. 내 발을 딛는데는 충분한 바위들이지만, 전후좌우로 여분의 널찍한 면적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발걸음이란 아무래도 두렵다. ‘불용의 용’이란 말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높고도 좁다랗게 산줄기를 이루고 있는 바위들을 이리 저리 밟아 나가다 보니, 이러한 바위들의 배열이, 맹렬한 기세로 모이고 갈라지고, 솟구치고 떨어지고, 부서지고 가라앉는 그런 거친 계곡의 격류에 견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두려움이 점차 누그러 진다.

낙차가 커서 혼자서 오르거나 내리기가 쉽지 않은 구간에선 어김없이 우리의 듬직한 선봉장 제이슨이 대원들을 끌어주고 잡아준다. 거칠게 흘러내리는 격랑을 거슬러 오르기 1시간이 좀 더 지난 즈음에, 마지막 등용문인 Class 3의 Crack 바로 밑(Narrow Notch)에 도착한다(14:10; 10.0 Miles; 7530’).

앞을 우뚝 가로 막은 10여m높이의 이 Crack면을 잘 올라서면, 이제 우리 이무기들 모두는 드디어 우화등선 승천하여 대망의 청룡도 되고 황룡도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을 직벽 앞에서 다들 망연한 표정이다. 제이슨과 나 외엔 모두 초등이다. 원숙한 기량의 제이슨이 ‘3 Points’를 강조하며 어렵지 않다며 용기를 북돋운다. 이어 등반요령을 설명하며 느린 동작으로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중간쯤의 턱(Ledge)에 발을 딛고 서서 이제는 한 사람씩 차분히 오르기를 독려하고 격려한다.

Class 3인 등용문을 다 잘 오르고, 다시 0.15마일의 짧지 않은 성결한 통천계단을 경건히 올라 드디어 천상세계, Antsell Rock 정점에 올라선다(14:30; 10.15 Miles; 7679’; 4432’ Gain). ‘하이 파이브!’로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한다. 사방팔방의 인간세상, 일망무제의 하늘세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 아닌 대자연이 억년에 걸쳐 쌓아올린 완성된 바벨탑이 바로 이 아닐까? 저만큼 거리의 태평양이라는 용궁에서 보내준다고 상상해보는 풍성한 바람이 ‘6룡’된 우리를 상쾌하게 위무한다.


오늘의 Main Event랄 수 있을Antsell Rock등정으로 우리 모두 작지 않은 성취감 행복감을 만끽한다. 도전적인 등산의 매력이겠다. ‘아름다움이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나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곳에 있노라!’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하였다’의 표현은 바로 이런 경지를 설파하는 것 일까?

해는 짧은데 갈 길은 멀어, 단 10분만에 정상을 뒤로 하고 Narrow Notch에 내려 모인다(14:56; 10.3 Miles; 7530’). 하산은 거리가 짧은 Sierra Club HPS의 Route 1을 이용키로 한다. 가파른 비탈면을 조심 조심 걸어내려 이윽고 PCT에 안착한다(15:34; 10.9 Miles; 6941’).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섯번째인 Apache Peak을 향해 역시 동쪽으로 PCT를 걷기 40여분쯤에 Apache를 오르기에 좋은 지점에 닿는다(16:40; 12.7 Miles; 7276’). 다시 PCT를 벗어나 기슭 위의 Saddle을 향해 오른다. 땅에 바짝 깔리는 낮은 키의 관목들 사이의 틈새를 통해 어렵지 않게 올라간다. 높이가 엇비슷한 두 봉이 있는데, 오른쪽(서쪽)봉이 정상이다. Antsell Rock을 오르고 난 후 라서 그런지, 다리는 다소 무거워도 기분만은 아주 가벼워, 이내 Apache Peak의 정상을 밟는다(17:02; 13.0 Miles; 7540’).

이 산에 가주지역 토착민이 아닌 Apache족의 이름이 부여된 까닭이 궁금하다. Sierra Club의 자료에 따르면 1867년 경에 작명되었는데, Apache족이 가주에 거주하진 않았으나 이 지역까지 약탈자(Raiders)로서 여러 번에 걸쳐 침입한 사실이 있고, Sespe족과는 전쟁을 치룬 기록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산을 무대로 그들 Raiders와의 어떤 일화나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정상사진을 찍은 후, 동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Use Trail을 따라 하산한다. 0.1마일쯤의 짧은 거리로 PCT를 만난다. 오른쪽 갈래를 따라간다. 해가 많이 기우는 기색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오늘의 힘든 산행을 위해 미리 몸을 적응시키려, 바로 어제, 왕복 12마일에 순등반고도가 6000’가 넘는 Bear Canyon Trail로 Mt. Baldy(10064’)를 등정했었다는 한 여성대원의 발걸음이 많이 무거워 보인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늘 새벽에 집을 나와 산행에 임하고 있으니, 그 저력이 놀랍지만, 또 그 대단한 발상도 놀랍다.

제이슨이 나에게 다가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힘들어 하는 여성대원과 함께 여섯번째의 산을 오르지 않고 Fobes Saddle까지 바로 갈테니, 내가 다른 대원들과 Spitler에 올랐다가 뒤를 따라와 Fobes Saddle에서 만나자 제안한다. 역시 리더로서의 결단과 자기 희생의 결기가 담긴 생각이다.

Spitler Peak 에 오르는 길목에서 제이슨과 잠시 헤어진다(17:47; 14.1 Miles; 7165’). 우리 4명만이 여섯번째 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Spitler라는 사나이가 1890년 경에 이 지역에 들어와 살게 된다. 그러나 이웃 Fobes Ranch가족들과 불화를 겪는다. 그래선지 그는 나중에 이곳을 떠난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마따나 그는 이 산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Spitler Peak에 올라 석양을 맞는다(18:02; 14.4 Miles; 7461’; 5733’ Gain ). 정상의 바위들도, 손가락 6개를 펴 보이며 밝게 등정사진을 찍는 우리의 몸도 얼굴도, 온통 다 붉게 물들어 있다. 잔등복명(殘燈復明) - 넘어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활짝 태우며 대지를 또 우리를 황홀경으로 인도해 주는 이 붉은 기운이 실로 장엄하고 은혜롭다.

올랐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다시 PCT에 내려선다(18:21; 14.75 Miles; 7165’). Fobes Saddle을 향해 다들 말없이 부지런히 걷는다. 대체로 내리막이라 힘들진 않다. 어둠이 짙어졌다. 자기 나름의 생김 생김을 가감없이 그대로 환히 드러내며 한껏 넉넉한 기품을 자랑하던 산과 줄기들이 이젠 모두 어둠의 장막으로 몸을 가리고 포근히 잠에 빠지는 그런 휴식의 시각인 것인데, 우리들만 홀로 부산하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헤드램프를 착용한다(18:45).

저만큼에서 제이슨의 밝은 불빛이 우리를 기다린다. 삼라만상 모두가 잠이 든 시각에 Fobes Saddle에 닿는다(19:05; 16.5 Miles; 6015’). 이러한 어둠을 더듬어 남은 두 봉우리 Palm View Peak(7180’), Cone Peak(6800’) 를 가기에는 우리 모두에게 크게 무리라 생각된다. Palm View Peak은 이 지점에서 부터 1200’의 고도를 더 올라야 하는데, 8년이나 젊었던 2012년 당시에도 무척 힘들어 했던 기억이 새롭고, 특히 Cone Peak은 그 자체가 커다란 암봉이라 이렇듯 지친 상태에서, 또 깜깜한 어둠 속에서의 암봉등반은 절대로 피해야 할 무모한 과욕이다. 제이슨에게 여기서 모두 더 이상의 등산은 중지하고 이 Fobes Trail로 하산하면 어떠냐고 의견을 묻는다. 한 가지 큰 문제는 Cedar Springs Trailhead에 차가 세워져 있다는 것인데, Fobes Trail로 내려가서 Uber를 불러 이동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계산으로, 결국 제이슨이 여기서 그만 등산을 중지하고 하산키로 결정하여, 마침내 Fobes Trailhead Parking에 도착한다(19:55; 18.5 Miles; 5123’; 5800’ Gain). 등산을 시작하여 13시간 47분을 걸은 산행이 됐다.

트럭 1대가 있을 뿐인 주차장은 인적이 드물어 적막하다. 셀폰 신호가 잡히지 않아, 일단은 포장도로인 Hwy 74까지는 걷기로 한다. 대략 1마일을 걸었을 때, 뒤에서 오는 트럭이 있어, 3마일 남은 이 비포장구간은 태워 주겠다는 호의를 보여, 전원 뒤쪽 화물칸에 올라 탄다. 어쨌거나 적잖게 다리 품을 절약하니, 이만해도 큰 은혜이다. Hwy 74에 이르니, 이제 셀폰은 걸렸는데 Uber와 Lift모두 서비스를 거절한다. 주차된 곳 까지는 아직 5.4마일이 남았다. 다 같이 포장도로를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불과 몇 분만에 일우와 Larry가 자신들이 주차장소로 뛰거나 속보로 가서 차를 가져 오겠다 자원한다.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둘은 앞서 나가고, 넷은 평보로 나아간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South Ridge Trailhead에 세워둔 내 차를 찾아, LA 한인타운에 도착한다(02:15). 결국 집 나선지 24시간만에 돌아온 꼴이 됐다.

Desert Divide에 있는 Sierra Club HPS의 8 Peaks 등산을 하겠다며 집을 떠나서, 6 Peaks에 그쳤으니, 용두사미일시 분명하나, 그래도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간직될 행복한 산행이었다. 제이슨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훗날 다시 이 등산을 하게 될 경우에는 ‘과유불급’을 염두에 두고, 오늘 우리가 올랐던 ‘6 Peaks’로 한정함이 옳겠다 깨닫는다.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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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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