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다음날 오후까지도 2020년 대선의 승자는 가려지지 않고 있다. 밤을 꼬박 새면서 지켜본 선거 당일 밤의 개표 상황은 역전과 재역전이 거듭된 오리무중이었다.
초반엔 “어? 이번엔 여론조사가 정확했나?” 싶게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우세가 눈길을 끌었다. 플로리다 등 경합주는 물론이고 공화 텃밭인 텍사스와 조지아에서도 앞서 갔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이든의 리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약진이 눈부셨다. 애리조나를 제외한 주요 경합주 5곳을 다 따라잡았고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의 승리도 확정지었다.
CNN의 앵커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트럼프가 리드하던 위스콘신에서의 바이든 역전을 전한 것은 4일 새벽이었고 몇 시간 뒤 바이든은 정말 중요한 미시간에서도 역전을 이뤄냈다. 0.7~ 0.9%포인트의 근소한 차이에 불과했지만 승세를 잡은 것이다.
4일 오후 3시 현재 AP가 집계한 선거인단 확보는 바이든이 248명, 트럼프가 214명이다. 바이든의 ‘승리로 가는 길’이 훨씬 밝아졌다. 자신이 현재 리드 중인 네바다와 미시간에서만 승리하면 총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명을 얻어 당선이 확정된다.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선거인단 20명의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바이든이 경선 시작부터 본선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걸었던 ‘러스트벨트’ 3개주(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집중 공략 작전이 막판 결정적 순간에 효력을 발휘한 셈이다. 확정은 아니다. AP가 바이든 승리 확정으로 분류한 애리조나를 뉴욕타임스는 막판 공화당 우편투표 러시를 근거로 4일 오후 현재 미확정 지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나머지 미확정 지역에서 다 승리해도 269명에 그친다. 그렇다고 트럼프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월스트릿저널 분석에 의하면 양 후보의 ‘승리로 가는 길’은 선거인단 22명을 추가해야하는 바이든에겐 11가지, 56명을 더 얻어야하는 트럼프에겐 5가지나 된다.
트럼프의 ‘집권 2기’는 아직 현실적 전망이다. 금년 여론조사에 대한 평가는 선거 결과가 확정된 후에 나오겠지만 트럼프에 관해서만은 크레딧을 받기 힘들 듯하다. 그가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국민의 절반 가까이를 사로잡은 ‘트럼프 어필’의 저력을 입증한 것이다. 설사 낙선된다 해도 공화당 내부 실세로 상당한 파워를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워싱턴을 넘어 전국 표밭 곳곳에 깊게 뿌리 내린 양극화 분열이라고 LA타임스와 월스트릿저널, 악시오스 등은 동시에 지적한다.
상대를 라이벌 아닌 ‘생존의 위협’으로 적대시하는가 하면 누가 당선되든 국민의 절반은 승리를 ‘도둑맞은 듯’ 분개하고 그 분노가 승자를 ‘우리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부감으로 비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직면할 험난한 정치 지형의 한 단면이다.
대선과 연방의회 선거에서 ‘푸른 물결(blue wave)’를 기대해온 민주당이 꿈꾸었던 ‘선거 다음날’의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바이든의 낙승과 하원 다수당 확대에 더해 대부분의 예측가들이 청신호를 보내온 상원 탈환의 ‘민주당 천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푸른 꿈은 개표 시작 후 오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코트자락 덕인지, 공화의원들의 기대 밖 선전으로 상원 탈환은 멀어져 가고 있으며 하원의 다수당 위치는 지켰지만 의석은 줄어들었다.
대법관 숫자 늘리기나 필리버스터 폐지 등 진보진영의 야심찬 개혁과제는 당분간 선반에 올려두어야 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들도 사사건건 발목 잡는 공화 상원과 속속 ‘위헌 판결’ 건네 줄 절대 보수 연방대법원의 제동에 입법화가 요원해 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선이나 의회 선거나 주요 전투들이 워낙 피 말리는 접전 상황이어서 언제 쯤 결과가 확정될지, 그 동안에 전세가 어떻게 바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개표가 다음 주에나 끝나는 주들도 있다. 바이든의 ‘270표 확보’ 계산에 포함 된 네바다는 다음 주 10일, 펜실베이니아는 6일, 노스캐롤라이나는 12일까지 도착하는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팬데믹으로 인한 우편투표 급증에 이처럼 가뜩이나 지연되고 있는 개표가 더욱 늦어질 위험에 처했다. 우편투표 개표 후 바이든에 역전당하고 있던 트럼프가 미시간에서 개표중단 소송을 제기하고, 위스콘신에선 재검표를 요구하는 한편, 펜실베이니아에서 선거당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의 무효화 중단을 위해 연방대법원 개입 요청을 준비하는 등 우편투표 개표저지 작전에 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선거법 전문가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한 투표용지는 “개표되어야 한다”면서 대법원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만큼 유효성에 문제 있는 표들이 있어야 개입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송에 희망 거는 트럼프, 승리 길목으로 접어든 바이든 - 칼 겨누며 싸워온 18개월의 긴 전투를 마무리하는 두 70대 전사(戰士)의 가는 길이 이렇게 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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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