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지난주 금요일 DMV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러 갔을 때 사무실 입구에서 DMV 직원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조금 어리둥절하게 들리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DMV에서 모든 방문을 온라인 예약제로 진행하는데, 필기시험은 별도 예약없이 현장방문을 통해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읽고 갔다가 낭패를 보고 DMV 직원에게 이런 단순하지만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듣게 되었다.
결국에는 내가 홈페이지 상단에 별도 박스로 쓰여진 내용을 못 본 잘못이지만, 평소 미국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불신 혹은 비효율성에 대한 못마땅함 때문에 예약을 하고 안 오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다가 안 온 사람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는데 나의 질문에 대한 즉답은 않고,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매우 큰 목소리로 귀찮다는 듯이 무뚝뚝하게)
10년전 뉴욕에 거주할 때 DMV에서 무면허 신분증을 발급받고자 두번이나 다녀오고도 결국 신분증을 배달받지 못한 이후 다시는 DMV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결혼을 하고 나니 자가용 소유의 필요성이 느껴져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DMV로 향했다가 예상치 못한 경험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DMV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워싱턴과 버지니아를 연결하는 Key 브리지를 건너면서 공평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상에 정말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뿐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지 선착순 문화는 미국 사회에서 깊이 녹아들어간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도 극장에 지정좌석제가 없고, 선착순으로 앉게 하는 건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서가 아닌, 그만큼 선착순 문화가 익숙해서 좌석제로의 변화가 더디었다고 본다.
그런데 공평함에 대한 질문은 대선 때문에 조금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으로 이어졌다.
내가 상대적으로 감성이 덜 발달해서 인종차별적인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제대로 인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때 95% 이상이 백인인 아이오와 주 시골에서 살 때에는 인종차별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한국에서 살다 대학원 때 다시 뉴욕에서 생활할 때는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일종의 버블 속에서 살았기에 인종차별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BLM 운동에 세상의 이목이 주목되었을 때, 회사에서 인종차별/성차별과 관련된 10가지 질문을 통해 본인이 지금까지 특권을 받으면서 살아왔는지 유무를 판단하는 간단한 테스트에서 내가 남자라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을 곳들에서 생활해왔기에 피해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또한 깨달았다.
팀원 중에 흑인 동료도 있어 올 상반기 BLM과 관련해 따로 팀 세션도 가졌고, 공평함에 대한 경험의 내용은 비교가 불가하게 다르지만, 그냥 머리로만 현상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조금 엉뚱한 이유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공평함에 대한, 그리고 내가 머리로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인종차별을 비롯한 사회의 불공평함을 가볍게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백악관이 주인이 바뀌면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메시지가 백악관으로 향하는 16번가 도로에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나에게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특별히 계속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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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