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ve me all your cash(돈 다 내놔)!”
당시 주유소에 걸려있던 벽시계와 유사한 시계. 이제는 사라진 스테이플(Staples) 회사에서 90년대 구입해 세탁소에서 사용했던 시계다. 전자시계는 일제라는 듯이‘Japan’ 글자가 선명하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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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유소에서의 아르바이트
주유소의 벽시계는 정확히 10시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즘은 사라진 벽시계들은 당시 모든 관공서와 직장에는 꼭 있어야하는 필수품. 오고 가는 손님 그리고 직장인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1981년 눈이 시리도록 화창한 봄날, 미군에서 제대하고 NOVA 대학에 다니며 주유소 마트 점원으로 일하던 나에게 큰 사건이 벌어진다. 강도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아침시간 손님들이 쓰나미처럼 스쳐간 뒤, 나는 점심 손님들을 위해 핫도그와 해프 스모크들을 전기 그릴 위에 얹고, 버터 향 구수한 팝콘을 튀기고 있었다. 그때 빨강 스포츠 차가 빠른 속도로 주차장에 들어오더니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젊은 백인 남성이 패신저 시트에서 튀어나오더니, 주저 없이 상점 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연속되는 한 동작으로 그는 허리춤에서 덩치에도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권총을 내 얼굴에 들이대며 “Give me all your cash(돈 다 내놔)”라고 소리 질렀다.
계산대 안에서 숨 쉬던 아침 매상 전부가 그의 손으로 넘어가고, 주변을 힐끔 둘러본 그는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마치 자신이 무슨 영화배우인 양 문을 박차고 나갔다.
# 영화 ‘바니와 클라이드’처럼
순간, 자동 반사적인 동작으로 그의 뒤를 쫓아 뛰었다. 겟어웨이(Gateway) 차에 범인의 온몸이 들어가기도 전, 시커먼 연기가 뒤 파이프에 작렬하고, 차 뒤 타이어들이 검은 아스팔트 조각들을 휘감아 날렸다.
그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갈 무렵에는 군에서 단련된 신체 덕분인지, 그들의 뒤 트렁크가 거의 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지고, 여섯 글자 번호판이 정확히 내 육안에 들어왔다. 달리는 차안에서 범인은 상체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고, 공범 여인이 그의 허리춤을 오른손으로 거머쥐고, 뒤돌아선 상태에서 범인은 권총을 나에게 겨누고 곧바로 한발의 총성이 귓전을 때렸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인지되고,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들은 마치 영화 ‘바니와 클라이드’(bonnie &clyde) 마냥 웃어대며 유유히 월터 리드 드라이브(Walter Reed Drive)로 멀어져 갔다. 빈 가게에 급히 돌아오면서 약 50미터 정도를 뛰었음을 인지했고, 가게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바라본 벽시계는 10시25분을 가리켰다.
# 고삘이들의 강도 행각
사건은 너무도 싱겁게 마무리 되었다. 내가 경찰에 보고한 차 번호로 경찰은 그 차 주인이 웨이크필드 고등학교(Wakefield High School) 학생임을 금방 알아냈고, 학교에 도착한 경찰은 주차장에서 범행에 사용되었던 차를 확인하고 범인의 라커에서 범행에 사용했던 총, 현금 모두를 증거물로 확보했다. 공범이었던 같은 고등학교 여자친구마저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 나니, 법원에서는 공방의 여지도 없이 유죄 판결 후 종결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산층 지역 고등학교, 그가 몰던 스포츠 카 등을 고려하면 어린 나이에 고삘이 여친에게 “쿨” 해 보이려고 저지른 철부지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쏜 총에 내가 절명했다면, 그는 살인범으로 남는다. 그러한 행위가 전가로 남아 평생 어떻게 자신을 옥죄는 지는 감안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때 죽었을 수도 있다.
그 후에도, 나는 DC에서 아르바이트 뛰던 시절에 수많은 강도 피해, 그리고 경찰 시절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한 사건들은 차후로 미룬다.
#포상금
얼마 후, 일상에서 스치고 지나치던 주유소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수많은 주유소들이 강도 예방 차원에서, 내가 근무하던 쉐브론(Chevron) 회사에서는 강도 방지 광고 캠페인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강도를 신고하고 범인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사건 제보자에게 포상금으로 10만 불까지 준다는 포스터들을 상점 유리창에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중국계 주인아저씨에게 포상금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중국인 특유의 무뚝뚝한 반응으로 대해주었고,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던 차에….
어느 날, 검은 007 가방에 양복을 차려 입은 변호사가 내가 근무하는 주유소에 걸어 들어와서는 서류를 내미는 것이었다. 중국인 주인이 슬그머니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네가 바라던 포상금이 왔으니 사인하고 수표를 받으라고 권했다. 서류는 간략했으나, 이 포상금이 그 강도 사건과 관련하여 내가 회사에 앞으로 청구 가능한 모든 권리를 영구히(permanently) 그리고 영원히(perpetually) 포기한다고 적혀 있었다. 수표 액수는 오백 불. 당시 학교 다니며 주유소에서 일하며 벌던 주급이 삼백 불 정도였으니 젊은 나에게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내건 십만불 캠페인에 비해 너무나 적은 액수.
그래도 마음이 흔들렸다. 밀린 아파트 비와 차 월부금이 급했다. 변호사나 경험 있는 어른들과 상의할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었다. 총알을 피하면서 육안에 새겼던 차 번호 그래서 손에 쥔 그 오백 달러는 아무 흔적 없이 수일 만에 사라졌다. 그 후, 중국 주인아저씨는 자주 나에게 절대 강도 뒤를 쫓아가지 말라고 당부해 주었다(아마도, 그는 보험이 걱정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총알을 피해가며 강도 뒤를 쫓아갈 때, 포상금을 바라며 따라간 것은 물론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사회정의 정신과 한국에서 배웠던 올바른 교육 그리고, 미군에서 몸과 마음으로 무장된 정신력 등으로 자동 반사 작용처럼 표출된 행위였다. 요즘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폭동과 폭력이 난무해도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 Comfortably Numb(편안한 무감각)
어른이란 무엇인가? 한 상점의 주인이란 또한 어떤 위치인가? 변호사란 직업은 어떤 것인가? 기업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가? 법이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 모두 편안하게, 그리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벽시계는 시간만 알리는 도구였던가? 아니면 우리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던 목격자들이었을까? 또 아니면, 사라져 간 모든 유품(relic)들과 같이 우리에게 그리움(nostalgia)을 자아내게 하는 가슴 저린 소모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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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