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평화의 시기에 살고 있을까? 혼란의 시기에 살고 있을까? 언제가 평화의 시기이고 언제가 혼란의 시기일까?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보편사’를 보면 ‘선사시대’,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고대 로마 시대를 ‘고전적 고대사’라고 구분하고 이후 유럽의 서로마, 중국의 한나라, 인도의 굽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한 5세기 전후를 ‘고전 후 시대’라고 한다. 5세기 전후부터 15세기는 ‘중세시대’ 그리고 그후를 ‘근대사’라고 하고 서양의 르네상스와 동양의 명나라 시대를 ‘근세’,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부까지를 ‘근대’ 그리고 지금을 ‘현대’라고 구분한다. 다시 말하면 주로 거대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곧 역사의 구분이 되는 것이다.
제국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흥하고 쇠락하고 멸망하는 과정을 한 시대로 구분하고 들여다 보면 탄생의 시기는 고통스럽다. 마치도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와 같다. 그러다 생존을 하면 기후도 좋고 먹을 것도 생기는 성장의 시대인 여름을 만난다. 이때는 에너지가 넘치지만 다툼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 다툼에서 이기는 세력이 부흥기의 가을을 주도한다. 그리고 갑자기 서리가 내리면 곳간에 쌀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은 확연히 차이가 발생하고 분열과 고통의 겨울을 맞이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 개인의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생로병사의 굴레는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사계절로 따진다면 평화의 시대는 가을이고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로 따진다면 노을이 아름답게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시기이다. 그 외에는 생존과 다툼의 시대이고 분열과 멸망의 시대이다.
기술 발전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정보화 시대 그것도 빅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있고 보편사로 본다면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서 코로나라는 서리를 맞은 겨울의 초입에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분열이 심각하다. 그 분열의 중심에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있다. 정치인의 선동은 분열을 초래하고 늘 불행을 유발한다. 우린 그것을 히틀러에게서 경험했다. 먹고 살기 힘든 대중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지게 되고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서 그 불만을 한 방향으로 증폭시킨다. 그러면 대중들은 흥분하고 기존의 법적 도덕적 규범을 너머 성난 파도와 같이 그 시대의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린다. 그래서 그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으면 혁명이 되고 잡지 못하면 반란, 민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가 지속적으로 선동을 하면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고 자신의 권위를 높여서 황제나 독재자가 되기 위함이었다.
지도자나 정치인은 늘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가 대중들에게는 행동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근거없는 내용을 가지고 선동하고 대중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특정 집단을 지목하고 그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몰아 내야 한다고 선동을 하면 그 사회는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인류의 권력 변화는 늘 내전처럼 진행이 되었기에 선거라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선거도 공정하게 진행이 되어야 하고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들이 승복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미국 대통령이 공정성을 문제 삼고 승복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가 임명한 공무원이, 전국의 백인 민족주의 민병대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 실탄을 구비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더구나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몰아내고 백인의 미국을 재건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뭉친 중무장한 수십만 백인 민병대가 펄럭이는 남부 연합기와 나치 깃발을 보면서 우리는 분명히 혼란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소수계로서 유색인종으로서 이민자로서 지금의 우리와 후대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를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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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