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억의 소환

2020-09-26 (토) 최동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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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옛 교우들을 만났다. 그동안 서로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멀리 사는 이들과는 가끔씩 안부만 주고 받다가 애경사가 있을 때, 주로는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만나 슬픔을 나누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음을 서로 안타까워 하고 있을 뿐이다. 머리가 눈에 띄게 희끗해 졌어도, 배가 나왔어도,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였어도 우리는 서로를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보았다. 그 사이 어떤 이는 두 손녀의 할아버지가 되었고, 다른 이는 사업을 접고 은퇴를 했다. 병이 깊어져 아내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이가 있었고, 아내를 잃은 이도 있었다. 하나 둘씩 사연들을 풀어 놓으며 울고 웃다 보면 결국에는 예전 기억들을 소환하는 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곤 했다. 비록 한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기억이 달라 때로는 충돌했으나 그 기억의 조각을 맞추어 가며 환호했다. 낯선 땅에서의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했으나 그래도 호기가 넘치던 시절을 함께 한 이들이어서 그들과 옛 일을 회상하는 일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시간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소환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처에도 새살을 돋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고, 넘어 설 수 없는 벽이라 느끼던 것들과도 쉽게 마주하게 하는게 결국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철새를 보려고 떠난 길이었으나 새의 군무는 보지 못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강을 따라 이어진 숲은 그늘이 깊어 오히려 서늘했다. 흙냄새와 그보다 더 깊은 풀향기에 취해 우리는 말을 아끼며 걸었다. 침묵이 그늘만큼 깊어졌다. 일군의 기러기 떼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거겠지?’ 하고 내가 물었으나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가 걷기에 집중해 내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안 순간 침묵을 깬 것을 후회했다. 마을로 내려가기 전 아내는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아내의 시선을 따라갔다. 멀리 산 아래로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 구름은 희고 부드러웠다. 군데 군데 여름이 떠난 자리 위로 가을 빛이 덮여져 갔다. 거친 풀섶이 가을 빛에 황홀하게 반짝였다. 문득 ‘어떤 빛은 빛으로 돌아온다’는 어떤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장미 꽃은 이미 빛을 잃었다. 치열하게 울던 매미는 여름과 함께 산화하고 있었다. 이제 그 여름도 소환되어야만 볼 수 있는 과거의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가끔 가던 식당에서 아내는 냄비 우동을, 나는 스시와 사케를 시켰다. 저녁이 창문 밖으로 깊숙히 내려와 있었다. 노을을 마주하는 시간에는 나이를 헤아리는 일 조차 의미가 없음을 이제야 알겠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두려워 늘 이렇게 스스로 갇혀 살까?’ 나는 여전히 묻고 있었으나 오늘도 자신있는 답 하나를 얻지 못했다. 그저 같은 모습을 한 채 ‘살아있음’ 을 위해서 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실은 모호하게 맞딱뜨린 ‘살아가기’ 위해서 라고 써버렸다. 떠나면 보내고, 찾아오면 받아 들이고, 그것도 아니면 한 두번 기억을 소환하고, 때로는 서툰 희망을 품으며 현실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그러다 계절이 바뀔 즈음에 그나마 한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삶의 끈을 놓칠까봐 단 하루의 일상조차 끊지 못하고 살아간 까닭에 나는 나를 보지 못했었다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치열하게 살았다고 지금 여기에 기록하고 있는것이다.

지난 태풍에 꺾인 나무를 치우고 나니 갑자기 앞 뜰이 텅 비어 버렸다. 아내는 키작은 갈대를 사다 모퉁이에 심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채울수 있음이다. 푸른 잔디를 보며 평화스러움에 넋을 놓고, 그곳에서 안달루시아 평원을 떠올린다. 평평한 돌 몇개를 놓아두면 초등학교 때 반드시 건너가야 했던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잠시 일상을 접고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어 잊혀진 나 자신과 마주해 본다. 그리고 코 앞에 닥친 세월을 살아 내느라 빠듯했던 지난 날을 위로하며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올 가을에는 작은 욕심 하나를 내어 보련다. 아니 내 남은 생애에 꼭 하나만이라도 욕심껏 움켜 쥐고 싶다. 재주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임을 믿고 그러다 소멸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드러내고 때로 감추는데 용쓰지 않는, 그저 들녁의 잡초처럼 소멸하고 싶다.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되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된다고 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평범한 날, 그 길 위에서 산과 함께 편안하게 물들 수 있으면 좋겠다.

<최동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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