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영화 네스트(The Nest) ★★★★ (5개 만점)
▶ 미국서 영국으로 이사한 가족, 부부관계 단절과 문화 갈등…고저택 배경 앙상블 연기 빛나
로리가 아내 알리슨에게 런던으로 이주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분위기 어둡고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게 만드는 가족 드라마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한 가족을 통해 부부 관계의 단절과 문화 차이로 겪는 갈등 그리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의 여자의 위치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훌륭한 영화다.
특히 영화는 4인 가족의 문드러져 가는 모양을 뉘앙스 다양하고도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단란하던 가족의 서서히 진척되는 붕괴로 인해 가족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고통과 한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어둡지만 아름다운 영화로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가 뛰어나고 어두운 조명을 사용해 작품의 성질에 맞게 찍은 촬영도 좋은데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옥죄어드는 작품으로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1980년대 중반. 맨해튼의 월스트릿에서 투자전문가로 일하는 자신만만한 영국 태생의 로리 오하라(주드 로)는 한탕 해 목돈을 쥐려는 공격적인 사람이다. 그의 미국인 아내 알리슨(캐리 쿤)은 승마 교사로 둘 사이에는 알리슨의 전 결혼에서 본 말발 좋지만 마음은 따스한 틴에이저 딸 샘(우나 로쉬)과 샘의 의붓동생인 아들 벤자민(찰리 샷웰)이 있다.
어느 날 로리가 알리슨에게 월스트릿은 슬럼프에 빠져 있고 런던의 자기 옛 상사 아서(마이클 컬킨)로부터 좋은 일자리를 제의받았다며 이사 가자고 말한다. 로리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로 아내에게는 그 결정을 통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리슨은 이 결정이 탐탁치가 않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웬디 크루슨)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여자는 결혼했으면 남편 말을 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로리 가족에게 런던의 회사에서 제공된 집은 19세기에 건축된 고색창연하고 큰 저택. 주위의 땅도 넓어 알리슨은 미국에서 공수해온 검은 애마 리치몬드의 마구간을 짓고 운동을 시킨다. 모든 경비는 로리의 회사가 지불, 이들은 호화로운 삶을 산다. 로리는 회사에 나가 새 거래를 구상하고 두 아이는 새 학교에 나간다.
로리의 거래는 런던의 회사를 미국회사에 팔아 거액의 거간을 받는 것. 그런데 잘 나가던 이 거래가 빗나가면서 로리의 삶은 바닥으로 급락한다. 이로 인해 회사가 지불하던 모든 경비가 중단되면서 알리슨은 로리 모르게 이웃의 마구간 청소를 해 푼돈을 마련하는데 로리는 여전히 대박의 꿈을 못 버린다.
실의에 삐진 로리가 초라한 아파트에 사는 버리다 시피 한 어머니(앤 리드)를 만나는 장면에서 로리의 출신과 그가 성공과 상류층과 부에 집념하는 저의를 깨닫게 되면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와 함께 샘은 동네의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집에서 요란한 파티를 열고 벤자민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리치몬드마저 병이 든다. 이런 상황 하에서 로리와 알리슨이 다투는 신경전이 내뿜는 긴장감이 터질 것 같이 팽팽하다. 특히 로리와 알리슨이 로리의 친구부부와 거래 고객부부와 함께 참석한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때 알리슨이 내뱉는 말들과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다시피 하는 표정이 압도적이다.
네 명이 살기에는 너무 큰 음습한 기운을 품은 저택에서 벌어지는 부부관계의 붕괴가 거의 공포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데 주드 로와 캐리 쿤이 육체적 행위 없이 벌이는 싸움이 충격적이다.
로도 뛰어난 연기를 하지만 그의 연기를 압도하는 것이 쿤의 연기다.
샘 더킨 감독(각본 겸). R등급. IFC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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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