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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못생긴 송편

2020-09-14 (월) 윤덕환 / 오렌지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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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따라 한국 마켓에 갔다. 추석이 가까워지니 각종 선물 세트와 함께 떡들도 많이 보였다. 떡 진열대 앞에서 송편을 보니 오래전 내 어린 시절, 집에서 만들었던 못생긴 송편 생각이 났다.

상도동 종점에서 살던 우리 집은 근처에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많았다.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와 누나들이 집근처 동네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빻아가지고 왔다. 방안에 송편 재료들을 펼쳐 놓고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어머니는 내게 산에 가서 솔잎을 따오라고 했다.

가지고 간 냄비에 솔잎을 수북이 따서 가져오니 어느새 송편들을 모두 빚어 놓으셨다. 깨와 검은 콩 등을 넣고 빚은 송편을 가리키며 누나들은 내게 어느 것이 제일 예쁘냐고 묻기도 했다. 천연색 송편 만들기가 어려워 모두 흰색뿐이었다.


어머니가 부엌 솥에 하얀 헝겊을 깔고 그 위에 내가 따온 솔잎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송편을 모두 올려놓고 시꺼먼 솥뚜껑을 닫고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얼마 동안 쪘다.

솥뚜껑을 열자 솔잎 향기가 확 났다. 누렇게 변한 솔잎위의 송편들이 모두다 솔잎 까닭에 얼굴 모두에 칼자국이 났다. 찌그러진 것도 있고 속이 터져나온 것도 있었다. 각각 개성이 있게 생기긴 했지만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못생긴 송편들이었다.

둘러 앉아 하나씩 맛을 보니 보기와는 딴판이었다. 은근한 소나무 향기에 깨와 콩 맛이 진미였다. 얼마나 별미였던지 반세기가 훨씬 넘은 세월에도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한국경제가 빈곤하여 추석이나 돼야 먹어볼 기회가 있었던 송편을 어머니나 누나들이 손수 만들어준 정성과 애틋한 정이 담기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내가 카트에 장본 것을 잔뜩 싣고 내게로 왔다. 떡 진열대 앞에서 송편을 쳐다보고 있는 내가 측은해 보였나보다. 나를 보고는 먹고 싶으면 사주랴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쑥색 송편을 카트에 담는다. 어린 시절 그 못생긴 송편 맛만은 못하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그 때를 추억하면서 마켓 송편을 먹어보리라 생각했다.

<윤덕환 / 오렌지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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