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미국서 발생한 백인경찰의 과잉조치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며 (Black Lives Matter)”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구조적 차별이라 함은 성별, 인종, 출신지, 국적, 가족형태, 성적지향, 성 정체성, 학력, 장애들을 포함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1964년 Civil Right Act가 통과되고 근 50년동안 제도적인 인종차별은 사라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성소수자에 대한 은밀한 차별이 점차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드러내놓고 차별을 받아왔지만 동성애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체성을 숨긴 채 이미 이 사회의 주류층에 많이 진출해 있었다. 존재를 특별히 알리지도 않았고 사회에 순응할것을 추구했으며 심지어는 동성애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1980년대 에이즈병이 창궐한 이후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소수자 운동이 처음으로 조직적으로 생겼다. 1998년에는 튜 셰퍼드라는 대학생이 두 사람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후 울타리에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동성애자라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 등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저지르는 폭력 등을 연방 증오 범죄에 포함시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이 법에서는 성별과 성 정체성, 성적 지향, 그리고 장애인이 포함됐다.
2003년도에는 매사추세츠 주법원이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처음으로 동성결혼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6월26일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은 위헌이며, 동성 결혼이 가능한 주에서 공증된 동성결혼은 다른 모든 주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 내림으로써 미전역에서의 동성결혼을 합법화 시켰다.
그리고 바로 몇 개월 전 2020년 6월, 직장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연방정부의 직장 내 보호 조치가 전국의 성소수자 직원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첫 판결이다. 이 판결은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미국인들의 근본적인 시각 변화를 반영하는 강력한 예가 됬을뿐 아니라, 성 소수자 인권 보호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직원을 해고한 전례도 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성애자가 연방정부와 그 관련기관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었다. 65년이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었으나 이번 연방법원의 판결로 뒷통수를 맞은격이 됬다.
최근에 연방대법원은 동성 연인에게 입양면허 발급을 거부한 한 가톨릭 단체의 행위가 위법인지를 가르는 재판을 시작했다. 이 판결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는 일부 종교의 자유가 우선인지 성소수자의 권리가 우선인지가 판가름날 예정이다.
현재의 미국및 세계 주류 분위기는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가 대세이다. 사회적 분위기와 유행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테면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성하면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반대하면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반면 많은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의 사회적, 법적 정당화에 불안을 느낀다. 기독교 성직자들이 신앙에 따라 동성커플에서 주례를 거부할경우 고발을 당하거나 기독교 학교가 동성결혼을 반대하면 세금면제 지위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이나 권익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종교의 믿음을 지켜주어야 하는 신앙의 자유가 문제가 된다. 사실 미국은 앞서 언급된 판결들로 인해 동성애를 반대할경우 처벌받게 되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가 일찌감치 되어버렸다.
혹자는 교회는 성소주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의해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포용하면서 그들의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모든 인간 존엄을 바로 세우는 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체제, 그리고 서로를 평등한 눈으로 바라보는것, 이것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교회가 당연히 받아드릴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동성애라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남자와 여자가 일체를 이루는 것을 결혼이라고 되있고 어떤 경우에도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로 표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고통과 아픔을 가진 자들에게 다가 갔었다. 사회적 약자들과 성소수자들에게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게 맞다. 그들이 사랑해야 되는 대상에는 종교, 문화 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고 이는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들을 결코 차별해선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받아드리는것이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용납이란 용서한다는 뜻이지 계속 죄를 짓는것을 묵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같이 회개하는 죄인으로서 또는 동료 순례자로 서로 용납하는것이지 죄를 같이 계속 짓자는 뜻은 아니다.
한가지 분명해보이는 점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 분명히 말해주고 훈계해야 하지만 사랑없는 훈계는 공허할뿐이고 반발만 불러온다는 점이다. 물론 실행은 못하면서 이론만 읊어 대는 필자의 짧은 소견이고 그동안 성소수자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편견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그들이 왜 동성애자가 되었고 얼마나 갈등이 많은지도 한번쯤은 이해해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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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스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