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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산책] 여성 팬들의 심금을 울린 베스트 1위의 곡(2) - 허무한 마음 (노래 : 정원)

2020-08-28 (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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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산책] 여성 팬들의 심금을 울린 베스트 1위의 곡(2) - 허무한 마음 (노래 : 정원)
“마른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지난 가을 날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겨 놓고 가버린 사람/ 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 찬 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 /돌아온다는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쓸쓸한 슬로우 록 리듬에 애절한 ‘정원’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져 한 반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노래. 왜? 어째서 그토록 여성 팬들의 마음을 훔쳤던 것일까? 우선 그 당시 시대의 배경을 돌아보자. 한국은 당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수출 드라이버 정책을 폈다. 따라서 많은 공장이 지어졌고 이와 관련하여 많은 여성들이 농촌과 산촌을 떠나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시름을 달래준 노래는 바로 ‘허무한 마음’이었다. 하루종일 공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이들은 고향의 그리움과 지친 몸을 풀기위해 그들의 유일한 낙인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의존했다. 노래나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그들의 고달픔을 잊었다. 이때에 등장한 노래가 바로 ‘허무한 마음’이었다. 자신들이 가진 쓸쓸하고 외로움 마음을 잘 표현하여 마치 자신의 모습을 오선지에 담은 노래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혼자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듣던 바로 그 노래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사유는 이렇다. 8인조로 구성된 김형광 밴드에서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던 작곡가 오민우에게 신인가수 정원이 1965년 어느날 찾아 왔다. 찾아온 그는 준비해온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이 노래를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까지 오민우는 은방울 자매의 노래 ‘큰 방울’, 박애경의 ‘처녀별’, 박재란의 ‘뉴욕의 아가씨, 남일해의 ‘돌아오라 카츄싸’등의 노래를 작곡한 중견 작곡가였다. 노래를 들은 오민우는 작사가 전우에게 술을 사주면서 간절히 부탁했다. 그 당시 전우는 당대의 최고 작사가였다. 금호동의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이석의 ‘비둘기 집’, 성재희의 ‘보슬비 내리는 길’, 배호의 ‘누가 울어’,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조경수의 ‘돌려 줄수 없나요’, 박재란의 ‘밀집 모자’, 위키리의 ‘저녁 한 때 목장 풍경’ 등을 작사하여 당대의 최고 작사가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술 친구인 오민우를 위해 기꺼이 노랫말을 만들어 주었고 반주는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4인조 록 그룹 ‘싸우트스’가 담당했다 이렇게 하여 우여곡절 끝에 ‘허무한 마음’이 킹 레코드 회사에서 녹음을 하여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허무한 마음’을 작곡한 작곡자는 오민우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 오리지날 작곡자는 가수 정원이며 오민우는 이 노래 편곡자가 정답이다.


정원은 ‘허무한 마음’ 성공 이후 오민우 작곡자와 팀을 이뤄 ‘미워하지 않으리’를 발표하여 공전의 힛트를 기록, 탄탄한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이어서 3탄인 ‘갈대의 순정’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가수 정원을 탐내는 레코드사가 많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규모가 제일 큰 지구 레코드사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자 정원은 마음이 흔들려 그 동안 정든 킹 레코드사를 떠나 라이벌 회사로 옮겼다. 그러자 킹 레코드에서는 정원에게 줄 노래 ‘갈대의 순정’을 불러 줄 가수를 다시 물색할 수 밖에 없었다. 지인들의 소개로 새로 발굴한 가수가 바로 박일남 이었다. 저음의 가수이지만 음 영역이 다양하여 노래를 자유자재로 소화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그는 이 노래를 운 좋게 불러 불멸의 가수로 기록되고 있다.

정원은 언젠가 사석에서 이렇게 말 한적이 있다. “그때 내가 지구 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갈대의 순정’은 내 노래가 되었을텐데 킹 레코드사를 떠나는 바람에 평생의 레퍼토리를 잃어버렸다”고...그러면서 이어서 말했다. “사람에게는 운명과 숙명이 있다. 운명이란 앞에서 다가오는 돌이라 피 할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라 피 할수 없다고....”그에게 ‘갈대의 순정’은 숙명의 돌이 되었던 셈이었다. (그의 소속사 이전으로 행운을 잡은 박일남은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끝끝내) 1960년대의 한국 경음악계 가수들의 주 활동 무대는 라디오 음악 프로나 극장식 쇼 무대였다. 이 당시 ‘정원’은 ‘ 뜨거운 안녕’을 부른 ‘쟈니 리’와 함께 극장 쇼 무대의 인기 스타였다. 지방 쇼는 대도시 보다 중소 도시, 중소 도시보다 소 도시가 더욱 인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이 당시엔 텔레비젼이 귀하던 시절이라 지방 쇼 외에는 가수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쇼가 공연되는 날에는 온 동네가 떠들썩 했었다. 정원이 출연하는 쇼는 항상 관중이 넘쳤다. 그는 2015년 2월 28일 별세했지만 그가 남긴 ‘허무한 마음’은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린 최고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끝)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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