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15)

2026-02-19 (목) 04: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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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을 통역하는 일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15)

요리 수업의 재료들(떡국, 유자 떡갈비, 세 가지 전)

설날, 곧 정월 초하루는 한 해의 첫날을 뜻한다. ‘설’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해석이 전해지는데, 새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 곧 ‘낯선’ 날이라는 풀이와 조심스럽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설다’에서 비롯되었다는 풀이가 그것이다. 어느 쪽이든 설은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의 시간, 아직은 조심스러운 시작을 품고 있다.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15)

참가자 모두가 함께 만든 떡국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는다. 낯섦을 털어버리고 익숙함으로 나아가려는 굳은 의지처럼 매년 반복한다. 지역마다 떡국을 끓이는 방식은 다르지만 맑은 장국에 떡을 넣고 끓여 갖은 고명을 올려내는 마음 쓰임은 같다. 그렇다면 이 의식은 통역될 수 있을까. 낯선 언어를 통해서도 이 조심스러운 시작의 의미와 떡국을 끓이는 마음이 함께 전달될 수 있을까.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가 화제다.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이 드라마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요리는? 요리도 통역이 될까.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15)

요리 수업을 통해 설날을 통역하는 박지영 요리 전도사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15)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포스터.



설날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의 한 요리 수업에서 떡국을 영어로 설명하는 박지영 한식 요리 전도사를 만났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Park’s Kitchen을 운영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셰프라고 칭하지 않고 한식 요리 전도사로 소개한다. 집을 개방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한식 문화를 알리게 된 그녀의 열정은 어머니의 손맛에서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좋다고 굳게 믿는 어머니의 손맛과 그 레시피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한 것이 한식 요리 수업이었던 것이다.

정원을 꽉 채운 이번 한식 요리 수업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녀와 함께 온 가족, 연인과 함께 온 커플, 여러 번 참여해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한식에 대한 각자의 궁금증을 품었다는 점이었다. 곧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박지영 요리 전도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국적도 언어도 참가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박지영 요리 전도사는 육수 이야기로 수업을 열었다. 양지머리와 사골뼈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는 시간, 뼈를 한 번 끓여 불순물을 제거한 뒤 다시 깨끗이 씻어내는 과정, 센 불에서 시작해 약불로 줄이며 오래도록 끓여내는 불의 세기를 다뤘다.

“Take the brisket out first after 2 hours then boil for 12 hours more. (두 시간 후에 고기를 먼저 건지고, 그 뒤로는 열두 시간을 더 끓입니다.)”

열두 시간이라는 말에 참가자 모두가 놀랐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인 듯싶었다. 그 순간, 뜻밖에도 나의 이민 초기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영어공부를 하며 요리 실력까지 늘려 보고자 푸드 채널을 즐겨 봤는데 셰프가 수프를 끓이거나 파스타 소스를 만들 때 치킨스톡(Chicken Stock)과 비프스톡(Beef Stock)을 쓰곤 했다. 나는 이 식재료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종이팩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따라서 사용하는 액체이자 냉장고가 아닌 팬트리에서 꺼내온 식재료. 그 맛이 어떤 맛일지 상상조차 힘들었던 그 순간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스톡의 간편함에 놀랐고, 오늘의 참가자들은 오랜 시간을 들이는 방식에 놀랐을 것이다.

수업을 지켜볼수록 박지영 요리 전도사의 수업은 단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맥락을 옮기는 일에 가까웠다. 한국인들이 설날에 왜 떡국을 먹는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설날 귀향길의 풍경은 어떠한지 등을 나누며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녀의 떡국 레시피는 유인물로 정리 되어 모두 공개되었지만 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분량과 순서, 재료가 또박또박 적힌 레시피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종이 위에 적히지 않은 이야기가 더욱 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박지영 요리 전도사는 설명할 때마다 한 번 더 되물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을 마주하고, 그들이 잘 이해했는지, 놓친 건 없는지 살폈다. 마치 통역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확인의 과정이라는 듯이. 사실 그녀의 수업 진행 방식은 유려함보다 성실함에 가까웠다. 한국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던 설날의 의미를,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믿음을, 그리고 국물 한 그릇에 담긴 기다림의 시간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조리 하는지, 왜 이 재료인지, 왜 이 시간이 필요한지를 전하는 그녀의 수업 방식을 보며 통역은 언어의 다름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의 부재를 채워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리도 충분히 통역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단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태도까지 함께 건너가 맥락의 부재를 채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통역하는 사람, 박지영 요리 전도사는 이번 요리 수업을 통해 설날이라는 한 장면을 영어라는 다른 언어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면서도,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거나 맥락을 흐트러놓지 않았다. 오히려 설날은 요리가 문화가 되는 순간임을 상기 시켰다.


박지영 요리 전도사의 떡국 레시피

재료: 사골 2kg, 양지 600g, 생강 30g, 월계수잎 3–4장

만드는 방법:

[육수 준비 (완성 약 2.5L)]
1. 양지는 1시간, 사골은 3시간 정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물이 붉게 물들면 두어 번 갈아준다. 오래 잠겨 있던 뼈는 그만큼 시간을 품는다.
2. 사골을 물에 넣고 30분간 끓인 뒤 첫 물은 과감히 버린다. 찬물에 뼈를 깨끗이 씻어낸다. 불순물과 함께 급한 마음도 씻어낸다.
3. 냄비에 물 5L를 붓고 사골과 양지, 생강, 월계수잎을 넣는다. 센 불에서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인다. 국물은 끓어 넘치지 않게, 그러나 식지 않게 유지한다.
4. 시간이 지나면 양지를 먼저 건져낸다. 결대로 식혀 썰기 위해서다.
5. 이후 약불에서 12시간 더 끓인다. 물이 줄어들면 중간중간 보충한다. 긴 시간 동안 국물은 뽀얗게, 깊게 익어간다.
6. 충분히 식힌 뒤 위에 굳은 기름을 걷어낸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약 2.5L의 맑고 단단한 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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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 준비]

달걀 지단
1.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를 나눈다.
2. 약불로 달군 팬에 기름을 아주 소량만 두르고 각각 얇게 부친다.
3. 식힌 뒤 마름모 모양으로 썬다.

양지는 결대로 얇게 썰어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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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끓이기]
1. 씻어 둔 떡국떡을 육수에 넣는다.
2. 간장, 멸치액젓, 표고버섯가루, 다진 마늘, 후추로 간한다. 마늘과 후추를 다시백에 넣어 사용하면 국물이 더욱 맑다.
3. 떡이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5–7분간 끓인다.
4. 그릇에 담고 썰어 둔 양지와 달걀 지단을 올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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