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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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2020-07-27 (월) 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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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첫 학기였다. 저녁이면 조금씩 시원해지는 바람이 좋았던 늦여름,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친구들과 가볍게 한잔을 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나는 같이 택시를 타고 우리 집 앞에 내려준다고 했던 친구들을 한사코 말렸다. 친구들의 오피스텔이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중간에서 내려 10여분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몇분 후, 강도의 몸 밑에 깔려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게도 약간의 찰과상을 입고 도망칠 수 있었다. 아파트 주민이 강도가 나를 덮치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일어난 지 이미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이 후로 나는 지금까지도 밤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리고 혼자 공공장소에 있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니냐는 질책과 함께 내비친 지구대 대원들의 까칠하고 무신경한 태도도 그날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슬프게도, 이 일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였다. 그 후로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일들을 종종 생각하고는 한다. 아주 단적인 예로 부부사이에서 아내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불러야하는 반면 왜 남편은 아내의 여동생을 ‘님’자를 뺀 ‘처제’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또 왜 남자배우는 그냥 배우이고, 여성일 경우 여배우가 되는 것인지 등등 우리는 시시때때로 한국 사회가 양성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며 살고 있다. 한국어는 젠더를 표시하는 언어가 아니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남성 권력 중심의 언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유지해 나간다.


물론 언어생활 이외에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하지 않아도 되었을, 대부분 불쾌하고 불평등한) 많은 경험을 의미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결혼할 거냐는 질문을 듣는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 날씬함을, 웃는 얼굴을 강요당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떠맡게 된다. 여자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날들을 아주 피곤하고, 치욕스럽고, 불공평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오늘을 다른 이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내일을 다른 날로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여전히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받으며, 승진률이 낮다. 아주 힘들게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 이들에게는 “니가 잘못 안거 아니야? 그럴 사람이 아닌데…” “너무 오버해서 받아들인 것 같아” “니가 여지를 주게끔 행동하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왜 그런 옷을 입었어” “왜 진작 얘기 안하고 이제 와서 그래?” “한탕 뜯어내려고 작정했구만” 류의 2차 가해가 돌아오곤 한다.

여성은 남자들의 서사에서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이해는커녕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적이며,” “맺고 끊음을 잘하지 못하고”, “스스로 범죄를 자초하고”, “의심받을 행동을 하고,” “남자를 돈으로 보는” 그래서 결국 아무리 구체적인 증거를 대고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잘못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 그 목소리마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부정당하고 만다. 가장 최근의 문단 내 성폭력 사건들과 박원순 성폭력 사건만 보아도 성폭력 생존자를 이런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견들이 넘쳐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 인권이 향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왜 여성들이 분노하는가를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여성들이 왜 대부분의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가 되며, 어떤 종류의 불안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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