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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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폭력

2020-07-20 (월)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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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전 미국 전역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 뉴스가 아닌 나의 두 눈으로 시위 현장을 보고 싶어 일을 마친 후 백악관 근처로 향했다. 내가 시위 현장을 보러갔을 때는 이미 주말에 한차례 크게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어 난리가 난 이후라 백악관 몇 블록 전부터 겹겹이 군과 경찰들이 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의 없이 평화 없다”(No Justice, No Peace)를 필두로 시위대는 다양한 구호들을 부르짖었다.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으로 미국 사회에 400년 이상 뿌리깊게 쌓인 인종차별과 사회 구조적 흑인 억압 및 차별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 표출 방법이었다. 흑인 및 유색인종만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현 미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백인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메시지들을 직접 써왔는데, 그 때 많이 본 문구 중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침묵은 폭력이다”(Silence is Violence)라는 표현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중고등학교 그리고 학부 시절을 여기서 안 보내서 그런지, 인종차별 특히 흑인들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이나 이해도가 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큰 논란거리가 된 한국 법원의 웰컴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이슈를 통해 침묵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포르노, 보통 ‘야동’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성인물에 대한 사회 아니 내 주변 사람, 특히 남성들의 인식은 여성들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고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다른 남성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잘 반응하지도 않았고, 큰 반감을 갖지도 못했다. 나도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런 음란물을 소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음란물이 나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것을 뛰어넘어,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것이 사회에 주는 폐해가 많고, 특히 여성들에게 직간접적인 많은 고통을 주고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런 음란물을 끊고 접하지 않겠다 여러 번 다짐했으나 어느 순간에 이런 것을 몰래 찾아보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면서도 답답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약혼녀를 만나면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달라져 힘들게 더 이상 음란물을 찾지 않게 되었다.

손정우 송환 거부 사태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한 성폭력과 관련된 솜방망이 처벌, 왜곡된 성문화에 대해 약혼녀가 열분을 토할 때 나는 또 침묵했다. 맞는 말이라고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아동포르노를 보거나 탐닉했던 건 아니지만, 음란물 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내가 뭐라고 말할 자리는 아니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손정우 사태에 대해 내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고, 단지 관심이 없고 바빠서 기사도 읽어보지 않아 내용도 잘 모르는 것에 대한 화가 나에게 전달되는 게 조금은 억울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침묵은 약혼녀에게는 세상의 그릇된, 잘못된 가치관보다도 더욱 큰 분노로 표출되었고, 이런 일을 통해 ‘침묵은 폭력’이라는 것을 절실히 통감하게 되었다.

주변 남성들 중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업무의 연장으로 룸살롱 같은 업소에 갈 수 밖에 없는데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는 말하지도 못하겠다고 고민하는 사람, 여자 친구를 두고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든가, 어떤 특정한 야동이 제일 좋은가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항상 침묵했는데, 결국엔 나도 그런 문화가 온 사회에서 공고히 유지될 수 있도록 협조 방임한 가해자였다.

나도 깨끗하지 못해서 모든 남성들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말은 못하겠다. 다만 더 이상 방관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흑인인권, 인종차별, 여성차별 그리고 특히 잘못된 성문화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더 침묵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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