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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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화상

2020-07-16 (목) 이은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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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어두움 쫒고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지팡이 짚고 구부정 서있는
한그루 해바라기
헐렁한 옷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들고 있었다
뜬눈으로 지샌 것을 보니
뉴욕으로 떠나는 딸에게
밤새 말없는 편지를 쓰고 계셨던 것이다
우린 알았다
어쩌면 이것이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만남일 것을
서로 무언의 대화로
끈끈한 작별을 했다
차에 시동이 걸리자
앙다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항에 도착해 가방을 열어보니
돌돌 말은 낡은 지폐가
고무줄에 묶여 자리하고 있었다

이듬해 어느 여름날
남동생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아버지가 무더위 피해
머나먼 피서지로 여행을 떠나셨노라고
내 마음에 심겨진 한그루 해바라기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이은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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