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클래식] 성전(聖戰)의 투사…바그너 이야기
2020-07-10 (금)
이정훈 기자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마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조금 쑥스럽기 조차하다. 바그너의 음악에 비하면 나의 음악 사랑은 태양과 반딧불의 차이라고나할까. 그저 좋아할 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만큼 사랑해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음악이라는 어떤 목표를 위해 일생을 바친 한 작곡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나의 소임이 아닐뿐더러 또 그럴 자격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오직 눈 높이를 낮추고 인생의 난파 당한 자들을 위하여, 바그너에 대해 소개한다는 것 자체로 하늘의 높은 축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다. 음악은 인생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바라보면 매우 소소하고 미미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표류하는 사람에겐 항구의 작은 불빛 하나도 구원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바그너의 작품 중 ‘방랑하는 화란인’이라는 작품도 있지만 음악이 표류하는 사람들에게 항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바그너이기도 했다.
내가 바그너를 처음 만난 것은 명동에 있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에서였다. 종로에 르네상스 음악 감상실이 있었지만 그곳은 학생들 때문에 조금 어수선했고 명동의 필하모니는 아베크 족이나 음악 마니아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어서인지 좀 더 아늑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뭐랄까, 십자군 전쟁에 임하는 전별식 분위기 같았다고나할까? 조금 무겁고 심각했지만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바그너의 음악은 초월적이고도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나는 십자가의 전사도 아니었고 바그너 마니아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분위기를 즐겼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동안 멍 때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중하다는 표현으로서는 다 할 수 없는, 음악의 어떤 극한대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은 크고도 화려하며 바다처럼 넓고 깊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이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예술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 그 때 왜 사람들이 바그너에 빠지고 또 바그너 마니아가 되는가를 깨달은 세례를 받은 셈이었는데 특히 ‘탄호이저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음악은 마치 ‘바그너敎에 입교한 것을 축하합니다’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등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감동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것은 가장 독일적인 것만이 줄 수 있는 우직한 성전(聖戰)의 투쟁이자 진실에 대한 목마름…절대 아름다움이란 그 얼마나 희생적이고 자신을 재로 태우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순교자의 모습인가? 물론 그 후 바그너 신도가 되지 못한 것은 이러한 독일적인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열이란 적당할 때가 좋은 법인 것 같다. 바그너의 예술이 반유대주의, 나치주의의 모태가 된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물론 나치가 바그너의 예술을 이용한 것이긴 했지만 바그너의 예술 속에 들어있는 들끓는 정열, 예술 지상주의, 비타협적 순수와 열정의 하모니는 예술의 모습이 아닌, 종교를 넘어서는 정신의 남용이며 과대망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그너의 예술은 늘 무언가에 미치게 만들고, 빠져들게 하던 젊은 날의 향수를 불러오곤 한다.
세상은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면으로 이르게 하는 혼탁함 때문에 불행하기도 하다. 불면이란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 불면을 말하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자존감의 상실, 믿음의 순수가 깨진 허무감 때문에 생기는 존재에 대한 불신이 주는 영적인 불면증이 존재한다. 절대 아름다움이란 종교적인 순수함이며 오직 영혼을 불태우고 재로 정화된, 또 그 속에서만이 잠들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마약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오직 절대 정화로서 만이 가능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음악 예술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신의 선물이기도 했다. 바그너는 자신이야말로 그러한 예술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이며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부르크너 등 후기 낭만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 푸치니와 쇤베르크를 비롯한 현대음악도 모두 바그너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었다. 사상으로서는 니체, 쇼펜하우워 등이 바그너를 호위하고 있었고 토마스 만, 푸르스트, 샤를 보를레르, 폴 베르렝 등 수많은 문학가들이 바그너의 숭배자들이기도 했다. 바그너라는 인물을 소개한 책은 지금까지 수만종이 넘고 있다. 하나의 책이 바그너를 더 좋아지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이 세상에 바그너를 해독할 수 있는 진정한 책이 존재한다면 바그너의 모습은 아마도 성자이거나 괴물,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음악이라는 작은 항구…그것은 화란인에 있어서의 구원의 불빛이었기도 했겠지만 바그너는 종교가 타락했을 때 조차도 예술이 그 구원의 역할을 다 해야한다고 믿었다. 오직 얼마나 절실하게 요하느냐에 달렸을 뿐, 바그너에게서 만큼 음악이 강력한 구원으로서, 때로는 마약으로…치열한 성전(聖戰)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다가왔던 순간도 없었다할 것이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