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는 고전 영화 - ‘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1950)
▶ 빌리 와일더 감독 흑백명작, 노마 역 스완슨 전율 연기…무성영화 스타들 출연 향수
광기에 휩싸인 노마 데즈몬드가 클로스업을 위한 제스처를 쓰면서 카메라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흑백 명작으로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허상과 실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들을 음침하게 웃어제낀 블랙 코미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할리웃에서 성공하려고 애쓰는 무명의 각본가 조 길리스(윌리엄 홀든)와 그를 기둥서방으로 삼는 무성영화 시대의 빅스타로 언젠가 스크린에 복귀하겠다는 망상에 빠진 나이 먹은 노마 데즈몬드(글로리아 스완슨). 조는 참 사랑을 발견하고 노마를 떠나려다가 처참한 종말을 맞는다.
죽음으로 시작해 광기로 끝나는 얘기로 죽은 남자와 미친 여자는 모두 환상을 쫓던 ‘할리웃 사람들’로 이들은 신화와 전설과 번쩍거리는 명성을 마구 찍어내는 할리웃이 뜯어내버린 상처에 붙은 딱지 같은 존재라고 하겠다. ‘할리웃의 과거요 현재며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 영화는 또한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이기도 하다.
와일더 감독은 현실성을 살리고 또 그것을 조소하기 위해 무성영화 시대의 빅스타를 비롯한 유명 영화 및 연예인들을 실명으로 출연시키는가 하면 이 영화 제작사인 패라마운트 스튜디오의 건물과 함께 실제 영화촬영 장면까지 삽입했다.
노마의 재떨이나 치우는 신세가 된 조가 무료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노마와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노마의 옛 친구들 중에는 무성영화시대의 빅스타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과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여류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하퍼의 모습이 보이고 ‘십계’를 만든 명장 세실 B. 드밀도 실명으로 실제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또 노마의 전 남편이었으나 지금은 노마의 하인과 운전사로 전락한 에릭 본 스트로하임도 무성영화 시대의 명감독이다.
영화에서 전율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광기를 발산하는 것이 스완슨의 연기다. 노마의 광기는 이 영화로 9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스완슨의 신들린 연기에 힘입어 폭발점을 향해 치닫는다. 스완슨은 당시 52세로 무성영화 시대의 빅스타였던 스완슨도 이 영화를 “나의 진정한 돌아옴”이라고 말했다. 케네디 가문의 보스였던 조셉 케네디의 정부이기도 했던 스완슨은 1983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작품 분위기가 너무 우울해 개봉 당시에는 대중의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인기보다는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경악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선셋 대로’는 감독상 등 총 11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고도 각본상(와일더가 공동 집필)과 음악상(프란츠 왁스맨) 및 미술상만을 받고 나머지 대부분의 상은 ‘이브의 모든 것’이 받았다. ‘선셋 대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의해 뮤지컬로 만들어져 빅히트하기도 했다. 뮤지컬에서 노마 역은 글렌 클로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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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